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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좋은 삶’을 위하여: 느리게, 느리게

입력
2016.05.22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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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삶이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몇 년 전부터 시작된 질문이다. 좋은 삶에 대한 보편 타당한 답은 없을 것이므로, 나 자신의 답이 궁금했다. 지금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귀 기울여 보고자 했다.

그 중 내면에서 아우성치는 몇 가지를 작년부터 실천해보려 했다. 평범하고 간단한 것들이었다. 산책하기, 하루 세 끼 밥 먹고 다니기, 천천히 다니기. 운동하기. 많이 욕심 낸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와 무관한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 세계에, 허둥지둥 맞춰가며 살지 않아야 가능한 것들이었다. 느리게 살고자 했다. 달팽이처럼…. 느리고 차분하게. 얼마간 그러다 보면 나 자신의 리듬대로 일상을 영위하는 방식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결과는? 예상대로 그 평범한 것들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꽤 소중한 것이었음에도.

복지국가에 관해 가르치면서 건강하게 살 권리, 휴식에 대한 권리, 문화적 생활을 향유할 권리가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것들이며, 인류가 오랜 투쟁을 통해 성취한 소중한 것이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정작 그러한 것들을 개인의 삶에서 구현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막막했다. 노동시간을 줄이고 자기자신과 타인을 돌볼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얘기하면서도 나는 한국사회에서 노동하는 인간의 삶 속에서 도대체 그것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욕심을 줄이고, 삶을 간소하게 하면 삶을 변화시킬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만으로는 일상의 파고를 넘기 어려웠다.

일과 삶의 균형이 필요하다. 그러나 매일 맞닥뜨리는 일의 세계에서 요구되는 것들은 야근하지 않으면 도저히 맞출 수 없는 것들이다. 짧은 기한의 일들이 던져지고, 납기일을 맞춰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는 가운데, 개인들은 일상을 희생시키며 조직의 성과를 위해 야근을 한다. 소중한 것들을 마음 속에 담아두고 반추할 시간은 허용되지 않는다. 고유한 삶의 리듬은 설 자리를 잃는다.

노동시간 통계치가 있는 2000년부터 최근까지 한국은 대부분 연도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의 노동시간을 기록했다. 게다가 2013년 2,163시간이었던 연평균 노동시간은 2014년 기준 2,285시간으로 오히려 증가하여 사회가 퇴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마저 불러일으킨다. 노동빈곤과 불안정성이 줄지 않는 가운데 노동시간마저 이렇게 길다면 한국인들은 도대체 어떤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OECD 국가 중 연간노동시간이 1,371시간으로 가장 적은 독일에서 노동중독과 피로사회라는 담론이 나와서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은 어찌 보면 역설적이다. 물론 그러한 담론이 독일사회의 노동시간 축소에 기여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럼 한국사회는 무엇이라 불러야 할지…. 전쟁 같은 일터에서 보호장치 없는 개인들이 1년 내내 전쟁을 수행 중인 전시사회라 불러야 할까. 불안정한 노동과 낮은 임금, 구조조정의 위협이 사람들로 하여금 전쟁터에서의 임무 수행을 피하지 못하도록 만들고, 많은 전사자들을 만들어내는 것일 테다. 24시간 돌아가는 장시간 노동사회인 한국사회에서 각자가 좋은 삶을 향해 좀 더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사회의 속도를 재조직화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에서 일의 리듬을 늦추는 것,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이 우선이다. 그 기반 위에서 좋은 삶을 향한 개인의 반추와 결심이 실행 가능하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일하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제때 식사하고, 햇살과 바람을 즐기며, 타인과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시간이다. 동네, 직장, 동아리에서 타인과 교류하는 ‘시간’이 주어질 때 어쩌면 더 나은 민주주의도 가능할 것 같다. 그 자리에서 기술 진보와 성장의 성과가 보통 사람들의 좋은 삶을 위해 어떻게 사용되어야 할지도 이야기할 수 있을 테다.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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