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내주 히로시마(廣島) 원폭피해지 방문을 앞두고 미일 우호관계에 찬물을 끼얹는 악재가 돌출했다. 미군기지가 밀집한 오키나와(沖繩)현에서 미군관계자에 의한 일본인 여성 살인사건이 발생하는 바람에 후텐마(普天間) 미군기지 이전을 둘러싼 기존의 갈등이 격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오키나와 경찰은 19일 미군 소속 남성 군무원 S(32)씨를 살인등 혐의로 체포했다. 미국 국적인 S씨는 지난달 28일 행방불명 된 여성 회사원 시마부쿠로 리나(20)씨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오키나와 가데나(嘉手納) 기지에서 근무해온 S씨는 경찰 조사에서 살인을 저질렀음을 암시하는 발언을 했으며, 시신 유기 혐의를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피해자가 “산책하러 간다”는 스마트폰 메시지를 남긴 뒤 연락이 두절됐다는 점에서 ‘묻지마 살인’일 가능성이 부각돼 일본 열도의 분노를 부채질하고 있다.
이번 사건으로 미국과 일본 양국 정부엔 비상이 걸렸다. 아베 총리는 20일 총리관저에서 굳은 표정으로 기자들과 만나 “피해자 가족을 생각하면 할 말이 없다”며 “매우 강한 분노를 느낀다”고 밝혔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무장관은 19일 심야에 캐롤라인 케네디 주일미국대사를 긴급히 외무성으로 불러 “사건발생은 극도로 유감이다, 비난하고 강하게 항의한다”고 말했다.
총리관저와 자민당 주변에선 이 사건으로 전후 71년만에 미국 현직 대통령이 처음으로 히로시마를 방문하는 외교이벤트는 물론 미일 정부가 주도하는 후텐마기지 이전 계획에도 차질을 빚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아베 정권이 전면에 내건 미일동맹 강화 치적과 관련해 국민감정에 균열이 생길 것이란 걱정이다. 당장 오나가 다케시(翁長雄志) 오키나와현지사는 “우리는 오키나와 미군기지가 얼마나 불합리한 형태로 놓여있는지 얘기해왔다”며 “통한의 극치”라고 분노했다. 현지 감정이 격앙됨에 따라 6월 실시되는 오키나와현의회 선거 및 7월 참의원선거에서 자민당은 더욱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됐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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