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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돌아보는 인문치료, 소년범에게 선순환 고리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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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돌아보는 인문치료, 소년범에게 선순환 고리될 것”

입력
2016.05.2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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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서 인문치료 수강 첫 명령

자서전ㆍ랩 등으로 자기표현

폭력성 낮추고 자존감 높여

정서적 치유 통해 재범 방지

청소년범죄 예방하기 위해선

경찰ㆍ법원ㆍ이웃주민까지 참여

지역사회 공조체계 마련해야

춘천지법 정현희 판사가 소년보호시설에서 새 삶을 설계하고 있는 보호소년이 보낸 편지를 읽고 있다.
춘천지법 정현희 판사가 소년보호시설에서 새 삶을 설계하고 있는 보호소년이 보낸 편지를 읽고 있다.

10호 천사. 춘천지방법원에서 소년보호사건을 맡고 있는 정현희(33ㆍ사법연수원 38기) 판사의 애칭이다.

소년보호사건은 보호자 위탁처분(1호)부터 아동복지시설의 6개월 보호처분(6호), 2년간 소년원 보호처분(10호)으로 나눠지는데, 가장 무거운 처분을 받은 소년들까지 재기에 도움을 준 그를 이렇게 부른다. 정 판사는 “아이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이 법원의 당연한 역할인데, 주위에서 좋게 봐주니 감사할 뿐”이라고 미소를 지었다.

정 판사는 지난 2009년 사법연수원 역사상 최초로 만점 수료자로 화제를 모았던 인물. 언론을 통해 모교(대원외고)를 빛낼 동문으로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함께 소개됐던 엘리트 법조인이다.

정 판사는 최근 소년보호시설에서 애견미용 기술을 익히며 새 삶을 찾아가는 여학생으로부터 한 장의 편지를 받았다.

보호관찰 기간 중 또 범죄를 저지른 이 학생은 “보호시설에서 증오로 가득 찼던 자신을 되돌아 보게 하고, 적성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 선생님들과 판사님이 너무 감사하다”고 적었다.

2014년 2월부터 3년 째 소년사건을 담당하는 정 판사는 이처럼 끊임 없이 소통한다. 재판 후에도 소년보호시설을 수시로 찾아 생활상태를 확인하는 것은 물론, 시설 원생들과 함께 하는 1박 2일 캠프에도 직접 참가했다. 바쁜 시간을 쪼개 원생들과 직접 손편지를 주고 받는 ‘펜팔 친구’가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수재’‘엘리트’ 같은 호칭보다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기 때문에 생긴 애칭인 ‘10호 천사’를 더 소중히 여기는 것도 이 때문이다.

소년재판은 ‘손이 많이 가는 사건’이다. 사실관계와 법리를 중심으로 판단하는 일반 민ㆍ형사 사건과 달리 소년사건은 판결 전 비행청소년이 자라온 환경과 앞으로의 교육방향을 파악해 적절한 처분을 내려야 하고, 판결 뒤에도 보호시설을 찾는 등 꾸준한 관리가 필요하다.

이런 사건이 부담스럽지 않느냐는 질문에 정 판사는 “아이들이 변해가는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고 답했다. “소년사건을 맡은 판사는 법에 따른 판단을 넘어 가족과 친구 관계 회복, 상담치료, 직업교육 등 후견인 역할도 해야 하죠. 한 사람의 인생에 관여하게 되는 것인데, 마음 속 증오가 가득했던 아이가 예전과 달라지는 모습을 보일 때 소년 재판을 맡은 것이 오히려 제게 축복이라 여겨집니다.”

춘천지법과 강원대 인문대학은 지난달 전국에서 처음으로 비행 청소년에 대해 인문치료를 도입키로 협약을 맺었다. 정현희(왼쪽 두 번째) 판사는 인문치료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맡는다.
춘천지법과 강원대 인문대학은 지난달 전국에서 처음으로 비행 청소년에 대해 인문치료를 도입키로 협약을 맺었다. 정현희(왼쪽 두 번째) 판사는 인문치료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맡는다.

정 판사는 얼마 전 보호소년 3명에게 보호관찰 1년 및 1년 이내 100시간의 인문치료 수강명령 처분을 내려 법조계와 교육계의 관심을 받았다.

전국 처음으로 인문치료를 도입한 춘천지방법원이 강원대 인문대학과 함께 소년범들의 정서적 치유에 나서기로 한 뒤 나온 첫 판결이다. “읽기와 쓰기, 말하기를 통해 자기 표현 능력을 키워 ‘욱’하는 폭력성은 낮추고 자존감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춰 재범을 방지하자는 게 인문치료명령 내린 취지”라고 정 판사는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구체적으로 춘천지법에서 인문치료명령을 받은 소년범은 강원대 인문대학에서 열리는 수업에 정기적으로 출석해 ‘미래시점에서 자서전 쓰기’‘랩으로 부르는 나의 이야기’ 등 표현능력 향상을 위한 수업을 받는다. 이른바 ‘나’를 찾는 과정이다. 이후 음악ㆍ미술치료도 함께 이뤄진다. 전문가 멘토와 교류하는 과정에서 사회와 소통하는 방법을 스스로 배우라는 메시지가 담긴 ‘따뜻한 처벌’인 셈이다. 정 판사는 “정서적 치유를 통해 그 동안의 자신을 돌아보는 과정에서 본인도 몰랐던 잠재력을 발견할 수 있다”며 “어느 분야에서든 자신이 인정 받을 수 있는 사람이란 것을 알게 되면, 이에 맞는 행동을 하게 되는 선(善)순환 고리가 만들어 질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그는 날로 흉악해지는 청소년 범죄 예방을 위해 학교와 자치단체, 경찰과 검찰, 법원, 이웃주민들까지 참여하는 유기적인 협력체계를 강조했다. 어릴 때부터 가정폭력과 아동학대에 노출된 아동이 청소년 범죄에 빠지는 경우가 많은 만큼, 지역사회가 공조해 악순환의 원인이 되는 가정폭력 등을 조기에 발견해 큰 사고를 방지할 수 있는 유기적인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이다.

정 판사는 “소년원 등 수형시설보다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생활할 수 있는 소년보호시설 확충과 예산지원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점도 빼놓지 않았다. 가정환경 등으로 더 큰 범죄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는 경우 법원은 적절한 시설에 위탁하는 처분을 내려야 하는데, 이런 보호시설이 전국적으로 부족한 실정이기 때문이다.

정 판사는 이어 “소년 보호시설의 예산운용 권한을 지자체에서 보건복지부 등 중앙정부로 바꿔줄 것을 요청했으나 아직 별 다른 방안이 나오지 않고 있다”며 보다 세심한 대책을 촉구했다.

“어른들이 따뜻한 배려로 우리 아이들에게 한발 다가가는 만큼 청소년 범죄에 대한 유혹도 저만치 멀어질 것입니다.”

춘천=글ㆍ사진 박은성 기자 esp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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