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콘텐츠진흥원의 게임 중독 조사
여가부 등 관련 분석과 큰 차이
제각각 실태조사 빨리 통합해야
인터넷과 휴대폰, 게임 등의 중독(과몰입)에 대한 정부의 실태조사가 납득할 수 없을 만큼 중구난방이다. 주관 부처별로 결과와 분석이 각각이어서 합당한 정책 대응은커녕, 정확한 실태 파악을 오히려 방해할 정도다. 더 나쁜 건 국민을 기만하는 이런 혼란이 단순한 행정적 무능의 결과가 아니라, 관련 실상을 되도록 덮어두려는 정부 당국의 ‘미필적 고의’에 의해 빚어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올 들어 중앙 정부 차원에서 발표된 관련 조사는 세 가지다. 지난 2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조사를 주도해 발표한 ‘2015 게임 과몰입 종합 실태조사’, 이달 초ㆍ중순 각각 발표된 여성가족부의 ‘2016년 인터넷ㆍ스마트폰 중독 이용습관 진단조사’와 미래창조과학부의 ‘2015 인터넷 과의존(중독) 실태조사’ 등이 그것이다. 얼마든지 유기적으로 통합할 수 있는 조사를 굳이 3개 부처가 제각각 하는 건 그렇다 쳐도, 핵심 관심사인 게임 중독 실태조사를 부작용에 비판적인 여가부 대신 게임 진흥 조직인 콘텐츠진흥원이 독점하고 있는 점부터 비상식적이다.
이 같은 문제는 조사 결과의 큰 편차로 나타났다. 콘텐츠진흥원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 청소년 12만3,182명 중 하루 평균 세 시간 이상 게임을 한다는 사람은 전체의 7%인 8,661명에 달했다. 말이 하루 평균 세 시간 이상이지, 학생들로서는 방과 후 시간 대부분을 게임에 쓴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사실상 중독상태를 의미하는 ‘게임 과몰입군’으로 분류된 응답자는 3시간 이상 게임자의 10분의 1인 0.7%에 불과했다. 세 시간은 고사하고 하루 평균 무려 여덟 시간 이상 게임을 한다는 응답자 482명에서도 과몰입군으로 분류된 사람은 전체의 5.6%인 27명뿐이었다.
학생이 매일 8시간 이상 게임을 해도 중독자로 볼 수 없다는 비상식적 분석이 나온 경과는 다른 데 있지 않다. 콘텐츠진흥원은 아무리 게임 시간이 많더라도 이용자가 정신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병리적 상황을 경험하지 않는 한 과몰입으로 분류되지 않도록 조사의 틀을 구성한 것이다.
반면, 여가부 조사를 토대로 한 분석은 전혀 다르다. 물론 여가부는 게임 중독 실태를 직접 조사하지는 못하고 인터넷ㆍ스마트폰 중독만 조사했다. 그 결과 초등생을 포함한 조사대상 청소년 146만여 명 중 스마트폰이나 인터넷 중독 상태라고 분석된 사람은 19만8,642명, 전체의 13.6%에 달했다. 문제는 인터넷ㆍ스마트폰 중독 청소년 중 적어도 6할 정도는 게임 때문일 것이라는 전문가의 비공식 분석이다. 이런 분석에 따르면 아무리 줄잡아도 5% 정도의 청소년들이 게임 중독 상태라는 결론이 유추된다.
문체부와 여가부, 유관 전문가 등을 상대로 실태조사가 이렇게 중구난방으로 진행되고 있는 배경을 취재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정부 부처 간 휴대폰과 게임 부작용에 대한 입장에 긴장과 대립이 발생했다. 미래부나 문체부는 관련 산업 진흥 차원에서 여가부 등의 비판적 입장이 껄끄러웠다. 결국 부처 간 협의에서 게임 중독 실태조사를 아예 문체부으로 넘기기로 했고, 이에 여가부도 더 이상 힘든 싸움을 안 해도 되니 은근슬쩍 관련 조사를 포기한 것이다. 말하자면 들쭉날쭉 실태조사, 나아가 관련 실상을 왜곡할 수도 있는 분식(粉飾)조사에 관련 부처들의 이해가 맞아 떨어진 것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스마트폰 보급률은 88%에 달했다. 일본 39%, 미국 72%, 독일 60%를 압도하는 세계 1위였다. 인터넷 보급률 역시 94%로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이 같은 모바일ㆍ인터넷 환경으로 개인의 생활양상이 세계에서도 가장 격렬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중이다. 따라서 인터넷과 스마트폰, 게임 등의 부작용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정책적 대응을 강구해야 하는 정부의 적극적 역할도 가장 시급하다. 하지만 정부는 오늘도 어정쩡하게 부작용에 대한 실태 파악조차 손을 놓고 있다. 노동개혁 실패는 국회 탓으로 돌릴 수 있지만, 정부 내의 이런 직무태만은 누굴 탓할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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