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생각해서 일찍 좀 다녀주라. 사랑은 바라지도 않는다. 나 심심하다, 진짜!”
짝사랑하는 남자의 빈 방을 향해 주저 앉아서는 홀로 오열한다. 결혼 전날에서야 이별을 통보하는 잔인한 약혼자에게는 “너무 창피해서 그러니 결혼은 내가 깬 걸로 해 달라”며 굵은 눈물을 떨군다. 짠하고 애틋하다. 요즘 시청자들이 열광하는 여자 오해영의 모습이다.
tvN 월화드라마 ‘또 오해영’의 여주인공 오해영은 학창시절 내내 이름이 같은 잘난 친구에 가려 투명인간 취급을 받았다. 고교 졸업한지 10여 년이 지났어도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일에 치이고 사랑에 치이고 친구에게도 치이는 오해영의 삶은 평범한 30대 미혼 여성의 자화상이다.
‘또 오해영’의 인기가 요즘 수직 상승 중이다. 지난 17일 방송된 6회가 시청률 6.1%(닐슨코리아 유료플랫폼 가구 시청률 기준)를 기록하며 지상파방송을 포함한 전 채널에서 같은 시간대 1위를 기록했다. 첫 회 시청률 2.1%에서 3주 만에 약 3배나 뛰어 오르며 최근의 상승세를 보여줬다. 방송가에서는 ‘시그널’의 히트를 이을 tvN의 기대주로 주목 받고 있다.
아직 대중에게 썩 익숙하지 않은 얼굴의 배우 서현진(31)이 ‘또 오해영’의 시청률을 끌어올린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오해영의 상처로 얼룩진 삶이 마치 자신의 일인 듯 소화해내는 연기가 시청자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다. ‘또 오해영’은 ‘서현진의 원맨쇼’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드라마가 그리는 오해영의 모습은 특별하지 않다. 평범한 30대 여성 직장인이라면 할 만한 행동으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산다. 파혼 경험이 있는 오해영은 동창회에 입고 나간 옷을 가리키며 “결혼 예물인데 언제 명품 입겠나 싶어 환불하지 않았다”며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짓는다. 자신의 고교 동창이자 회사 선배이고 같은 이름을 지니고 있는, 잘나고 잘난 또 다른 오해영’(전혜빈)을 향한 소심한 공격도 마다하지 않는다. 옆집 사는 남자 주인공 도경(에릭)에게 “회식 때 데리러 와 사귀는 척을 하자”며 뻔뻔하게 조르는 모습이 얄밉다기 보다는 사랑스럽고 귀엽다. ‘잘난’ 오해영과 도경이 함께 있는 모습에 화를 주체하지 못하면서도 “집에 들어오라”는 도경의 휴대폰 문자 한 통에 입 꼬리가 올라가는 모습으로 단순함과 순수함이 주는 매력을 발산하기도 한다. 오해영은 동명이인 오해영과 도경을 두고 삼각관계를 이루고 있다.
평범한 듯 하면서 미인이고, 예쁜 듯 하면서도 미모를 뽐낸다 할 수 없는 서현진의 맑은 얼굴을 통해 오해영의 매력은 극대화한다. ‘또 오해영’의 송현욱 PD는 “옆집 여동생 같은 친근한 분위기이면서도 예쁘게 보일 때도 있다”며 “여주인공의 희로애락을 다 표현할 만한 얼굴의 배우”라며 서현진을 높이 평가했다. 직장인 김진아(35)씨는 “30대가 됐어도 여전히 사랑에 서툴고 마음 졸이는 평범한 여성 오해영이 남 얘기 같지 않다”며 “한 회도 거르지 않고 이 드라마를 챙겨봤다”고 말했다.
서현진의 드라마 밖 삶이 오해영의 모습에 포개지며 묘한 공명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서현진은 2001년 SM엔터테인먼트의 4인조 걸 그룹 밀크로 연예계에 입문했다. 1집 앨범(‘With Freshness’) 한 장만을 남기고 그룹이 해체된 뒤 연기자의 길에 들어섰다. 오해영의 라이벌인 또 다른 오해영을 연기하는 전혜빈은 비슷한 시기(2002년) 걸 그룹 ‘LUV’로 데뷔해 남다른 댄스 실력을 선보이며 큰 인기를 끌었다. 걸그룹 출신으로 빛을 보지 못한 서현진의 과거와, 걸그룹 멤버로서 화려한 이력을 지닌 전혜빈의 면모가 비교되면서 드라마는 더욱 큰 감흥을 불러낸다.
서현진은 ‘황진이’(2006), ‘짝패’(2011) ‘제왕의 딸, 수백향’(2014)등 다양한 드라마에 얼굴을 내비쳤지만 별다른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연기자로서 빛을 발한 작품이 지난해 방송된 tvN ‘식샤를 합시다2’다. 세파를 음식으로 이겨내는 그의 씩씩한 모습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식샤를 합시다2’에서도 서현진은 결혼을 꿈꾸지만 밀린 월세 걱정에 시달리는 가난한 프리랜서 작가 백수지를 연기하며 여성 시청자들의 뜨거운 지지를 받았다. 서현진은 “안쓰럽거나 안아주고 싶은 측은한 캐릭터를 스스로도 좋아한다”며 “사연들이 워낙 기구하다 보니 측은지심 때문에 사람들이 내 캐릭터들을 좋아해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현진의 활약은 오랜 시간 다져진 연기 내공에서 비롯됐다. ‘또 오해영’ 같은 로맨틱코미디는 배우에게 많이 기댈 수 밖에 없다. 여주인공이 현실적인 면모를 갖춘 동시에 탄탄한 연기력을 선보여야 달콤한 정서를 빚어낼 수 있다. 서현진은 십 수 편의 드라마에서 크고 작은 배역을 가리지 않고 출연해 연기 기본기를 쌓았다. ‘또 오해영’의 박호식 책임프로듀서(CP)는 “서현진이 2014년 출연한 tvN 드라마 ‘삼총사’ 제작진의 추천으로 서현진을 눈여겨봤다”고 했다. 박 CP는 “(삼총사 제작진에게서)‘서현진이 훌륭한 연기자’란 말을 들었다”며 “연기에 물이 올랐다는 표현 밖에는 할 말이 없다”고도 평가했다.
조아름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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