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간 영어권보다 한국에서 더 많이 사용된 말이 bucket list다. 두 남자가 시한부 인생을 맞아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내용의 영화 ‘The bucket list’(2007)를 통해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것들’이라는 의미로 대중화되었다. 사실 이 말은 ‘kick the bucket’이라는 관용구에서 파생된 것으로 용어나 주제가 일상에서 사용하기에는 상당히 무거운 게 사실이다.
‘What's your bucket list?’를 ‘What are the things you want to do before you die?’라고 해도 질문 자체가 부담스러운 것은 마찬가지다. ‘kick the bucket’은 단순하게 ‘죽다’의 뜻이 아니다. 과거에 가축을 네 다리를 묶어 멍에(yoke)나 들보(beam)에 걸어 죽게 했고 사람을 교수형에 처할 때 눈을 가리고 손발을 묶은 채 양동이(bucket) 위에 세운 뒤 양동이를 차버려 목 매달려 죽게 하는 등 ‘죽이다’의 뜻으로 쓰이던 말이다. 이는 스스로 행위를 하는 능동사가 아니라 ‘사동사(使動詞)’의 의미로, 따라서 오늘날 자주 사용하는 ‘kick the bucket’는 수 세기 이전에 ‘죽이다’는 사동사로 더 많이 쓰인 것이다.
영국의 문헌에는 15세기 이전부터 해당 기록이 있었고 미국에서는 19세기 중엽 원주민의 용어와 엉터리 영어 kickeraboo가 쓰이다가 비교적 최근에 Louis Armstrong의 노래 Old Man Mose(1935)에 나온‘kick the bucket’과 그 뒤 등장한 유사한 가사들을 통해 ‘kick the bucket=die’로 일반화되었다. 그러다 Bucket의 어감이 나빠 ‘kick off’라는 동사어구가 더 많이 쓰이게 되었는데, 동일 제목의 영화와 내용이 알려지면서 kick the bucket(죽다)의 섬뜩한 내용이 아니라 bucket list 라는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용어로 둔갑한 것이다.
한편 bucket list를 들으면 일상의 list도 생각이 난다. List 적기를 좋아하는 list lovers에게는 list의 종류도 많다. 일상적으로 해야 할 일(to-do list)을 적어 두고 수시로 점검 목록(check list)을 만드는 사람도 있고 고민거리(brainstorming list)를 적어 놓고 또 고민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런 것들을 나중에 볼 수 있도록 시간별 기록을 해 두는(time-line list) 사람도 있다. 장사할 때 필요한 재고 목록(inventory list)과 일반 쇼핑을 하는 목록(shopping list)도 있고 시장에 장 보러 갈 때 쓰는 ‘grocery list’도 있다. ‘plan-to-eat list’나 ‘best foods to eat’을 적어 놓고 맛 집을 사냥하는 사람도 있다.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게 무어냐는 질문을 외국인에게 하기는 쉬운 게 아니다. 차라리 ‘What's your comfort foods(가장 정감이 가고 추억이 있는 음식이 무엇인가요)?’ ‘What's your best foods to eat?’ 같은 질문이 대화를 이끌기 더 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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