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이란 게임이론가들이 말하는 일종의 사회적 딜레마와 같은 겁니다. 폭력을 가하고픈 욕망이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폭력을 쓰지 말자고 약속하는 것이 모두에게 이득입니다. 이 딜레마는 인간의 지능 덕분에 조금씩 해결되어 가고 있습니다. 길게 보면 폭력은 줄어들고 있습니다. 선형적이고 불가역적이지 않을 수 있으나, 추세만큼은 확실합니다.”
한국을 처음 방문한 인지심리학 분야 대가 스피븐 핑커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20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서울디지털포럼(SDF) 단상에 서서 이렇게 강조했다. 핑커 교수는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동녘사이언스), ‘빈서판’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사이언스북스) 등이 책이 번역돼 국내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에이브러험 링컨 대통령의 언급에서 제목을 빌려온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는 발간 즉시 뉴욕타임스 ‘올해의 주목할만한 책’에 뽑히고,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가 추천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이 책에서 핑커는 세상이 점점 더 살기 어려운 지옥으로 변하고 있다는 비관론에 맞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대담한 주장을 내놔 화제를 불러 모았다.
핑커 교수는 강연에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구체적인 통계수치를 들었다. 영국, 네덜란드, 독일 등 다양한 나라에서 이용가능한 살인, 강도, 강간 등 강력범죄 통계를 들면서 “영국인은 800년 만에 살인당할 확률이 35분의 1로 줄었다”고 말했다. 또 국가간 전쟁, 내전 같은 대규모 분쟁도 줄었다. 여성ㆍ아동에 대한 학대ㆍ체벌도 확실히 줄어들었다.
핑커 교수는 이를 바탕으로 세상이 더 참혹해지기보다는 훨씬 더 좋아지고 있다는 낙관론을 펼쳤다. 그는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발달, 언론과 소설 같은 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타자에 공감하게 되고, 교육을 통해 폭력에 대한 부정적 태도를 배우기 때문”이라 풀이했다. 인터넷 발달로 혐오, 증오가 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인터넷은 우리가 좀 더 강하게 얽혀 있다는 관념을 주기 때문에 폭력을 줄이는 데 더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오늘날 우리들은 왜 더 세상을 불안하게 여기게 됐을까. 핑커 교수는 “기자가 오늘 전쟁이 안 일어났다고 뉴스를 보도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미디어에 대한 맹신 때문이라는 얘기다. 대안으로 “단편적인 사건 그 자체에 몰입하기보다는 그 사건을 둘러싼 전체적인 맥락와 전반적인 데이터 같은 것을 함께 봐야 한다”고 권했다.
최근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에 대해서도 “그럼에도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 가운데 하나”라며 똑같은 설명을 적용했다. 핑커 교수는 “개별 사건 하나에 너무 매몰되는 것보다는 전체적인 맥락과 관점 가지고 지금과 과거, 우리와 다른 국가 등을 비교하면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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