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서 죽고 싶었어요. 24시간 토하느라 화장실에서 못 나왔어요. 그런데 간호사분들이 올 때마다 ‘살 수 있어요’ ‘참으세요’ 하고, 의사선생님도 24시간 근무하는 듯 가끔 전화 주시고 힘내라고 하셨어요. 간호사가 머리를 감겨주는 순간 ‘이 분이 뭐길래 이 무서운 병 앓는 나에게 이렇게 까지 할 수 있나. 살아야겠다’고 힘을 냈습니다. 그러고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살고 싶다고 기도했어요. 의사 간호사분들이 저를 살렸습니다. 어떤 약보다 힘이 됐어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환자였던 A씨는 메르스 발생 1주년을 맞아 끔찍했던 투병 경험을 털어놓았다. 20일 보건의료개혁국민연대가 서울 명동 서울YWCA 대강당에서 열린 ‘메르스 사태 1년, 국민 200인에게 듣는다’ 토론회에서다. 환자가 밝힌 메르스와의 사투는 지난해 숱한 보도로 익히 알고 있다고 여겨졌던 것보다 더 치열했다.
A씨는 자신을 돌봐준 의료진에 감사를 표했지만 동시에 처음 감염됐을 당시 의료진의 대응에 대해서는 답답함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정부와 병원 누구도 이 병원에 메르스 환자가 있는지, 내가 무슨 병에 걸린 것인지 말해주지 않았다”며 초기 대응에 쓴소리를 했다.
김은미(54) 아산충무병원 수간호사도 대응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김씨는 지난해 6월 메르스 환자를 돌보다 감염된 의료진 중 한 명이다. 그는 감기 및 폐렴 증상으로 병원을 찾았던 경기 평택의 경찰관이 메르스인 줄 모르고 진료하다 감염됐는데, 해당 경찰관은 검사 결과가 1차 양성, 2차 음성으로 엇갈렸었다. 김씨는 “(한번 음성 판정이 나왔더라도) 보건당국에서 격리를 하거나 최소한 환자에게 마스크 착용 등 주의사항을 알렸어야 하는데 그런 대응이 하나도 없었다”며 “환자 관리만 제대로 됐어도 급격한 확산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1차 양성 판정을 받았다는 검사 결과만 공유됐더라도 병원 대응이 달랐을 것”이라며 “바이러스에 대처하는 보고체계가 너무 수동적이었다”고 비판했다.
정부의 사후 대책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은 부족한 점이 너무 많다는 평가를 쏟아냈다. 김윤 서울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는 “조기에 발견하고 진단하려면 의원급, 병원급 병원의 진단 능력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이에 대한 대책은 쏙 빠져있다”고 지적했고, 나혜경 인천의료원 간호사는 “음압병상이 확충되는 등 달라지고 있으나, 인력은 그대로”라며 “의료진의 희생을 강요하는 구조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채지선 기자 lemekno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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