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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의 길 위의 이야기] 수치심의 한 종류

입력
2016.05.20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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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동에 산다는 앞집 주인이 동네에 모습을 나타냈을 때 나는 그가 누구인지 짐작했다. 2, 3층 높이로 있는 앞집의 기와가 골목으로 쏟아져 사람이 크게 다칠 뻔한 아찔한 사건이 생긴 지 닷새째 되던 날이었다. 기와가 쏟아진 날 바로 경찰이 왔고, 재개발사무소와 주민센터를 통해 앞집 주인과 연락이 되었다. 그러나 곧바로 조치가 취해지지는 않았다. 나는 며칠 뒤 또 떨어진 기왓장의 사진을 찍어 앞집 주인에게 보내야만 했다. 그도 처음부터 내가 누구인지 알아챈 듯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는 내 시선을 피하며 우리 골목을 그대로 지나쳐 곧장 언덕을 올라갔다. 길은 꺾은 내가 뒤를 돌아보고 있을 때 그가 우리 골목으로 들어서며 멈춰 있는 나를 보고 당황했다. 짐작대로 그는 앞집 주인이었다. 그에게 크게 다칠 뻔했던 내가 불편하지 않을 리 없지만, 그런 마주침이 불편하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가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 오던 해 그는 앞집을 샀다고 했다. 대부분의 강남 사람들이 투기를 목적으로 이 동네의 집을 보지도 않고 산 것과는 달리, 그는 집의 내부를 꼼꼼히 살펴본 뒤 샀단다. 어쨌거나 이번 일은 초를 다투어 해결되어야 했지만, 열흘이 되도록 이웃들은 위험천만한 기왓골 아래로 지나다니고 있다. 이 위험 앞에서도 떠나지 못하는 사람의 무능함이 더없이 부끄럽게 느껴진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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