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嫌惡)’의 사전적 의미는 ‘싫어하고 미워함’이다. 하지만 ‘여성혐오(misogyny)’는 단순히 여성을 싫어하고 미워한다는 뜻보다 훨씬 넓은 의미로 쓰인다. 편견에 기초한 성차별부터 여성에 대한 폭력, 여성에 대한 성적(性的) 대상화까지 여성혐오에 포함된다. 이처럼 확장된 의미에서 보자면, 여성혐오의 역사는 참으로 오래됐다. 아담의 갈비뼈로 이브를 만들었다는 성경의 창세기 설화부터 여성을 남성의 부속물 정도로 보는 시각을 깔고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 고대 설화나 신화 속에서 여성혐오는 단지 여성을 낮잡아 보는데 그치지 않는다. 남성을 타락시키고 세상에 재앙을 불러오는 요물(妖物)쯤으로 여기는 비슷한 이야기가 곳곳에서 나타난다. 아담에게 금단의 선악과를 먹여 낙원에서 쫓겨나도록 한 것도 여성인 이브였다. 얄팍한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봉인된 항아리(‘판도라의 상자’로 널리 알려짐)를 열어 세상에 죽음과 질병, 질투와 증오 같은 재앙을 불러온 것도 그리스 신화 속에서 최초의 여자로 서술된 ‘판도라’였다.
▦ 여성혐오는 아득한 신화시대를 넘어 기독교나 이슬람교 같은 지배적 종교는 물론, 철학과 문화 곳곳에 널리 스며들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여성을 불완전한 존재로 여겼다. 그래서 “여성과 노예의 본성은 시민이 되기에 적절치 않다”고 했다. 세익스피어는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이니라’라고 했다. “여성은 유치하고, 천박하며, 근시안적이기 때문에 천성적으로 복종하는 역할에 걸맞다”는 극언의 주인공은 놀랍게도 근대의 지성으로 꼽히는 철학자 쇼펜하우어다. 니체 역시 “여성에겐 깊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예 없다”고 주장했다.
▦ 하지만 세상이 온통 여성혐오로 가득 찼다고 볼 것까지는 없다. 사실 혐오의 틀로 보면 세상은 여성혐오뿐 아니라, 남성혐오나 정치혐오, 부자혐오와 인종혐오 등 만인 대 만인의 온갖 혐오로 가득 찰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 강남역 근처에서 발생한 ‘묻지마 살인사건’이 여성혐오 범죄로 알려지면서 SNS가 들끓고 있다고 한다. “여자들이 나를 무시해서 그랬다”는 범인의 진술이 우려를 증폭시켰다. 하지만 정상이라면 아무리 여성이 싫다고 그런 짓까지 저질렀겠는가. 정작 걱정스러운 건 갈수록 극단적 광기(狂氣)에 의한 범죄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