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국내 중학교에 자유학기제가 전면 시행되면서 이와 비슷한 학제를 선구적으로 운영해 온 외국의 사례가 관심을 끌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덴마크의 애프터스콜레는 아일랜드의 전환학년제와 더불어 가장 주목 는 교육제도다. 덴마크 의무교육 과정(1~10학년, 한국의 초ㆍ중학교) 막바지에 1년 동안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다양한 학습 체험을 쌓으며 진로를 모색하는 사립 기숙학교인 이곳은 상급과정 진학을 앞둔 학생 25%가 거쳐갈 만큼 제도적으로 완숙됐다. 덴마크에선 의무교육을 마친 학생들이 김나지움(대학 진학 준비과정) 또는 직업훈련학교로 진학하는데, 애프터스콜레 출신 학생들은 대학 진학이나 직장 생활에서 보다 성공적 성과를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덴마크 교육제도에서 애프터스콜레만 떼어 상찬하는 것은 숲을 보지 못하는 근시안일 수 있다. 덴마크의 교육자 니콜라이 그룬트비(1783~1872)의 교육철학을 전파하는 일본그룬트비협회를 이끌고 있는 이 책의 저자는 애프터스콜레를 포함, 의무교육부터 성인교육까지 아우르는 ‘폴케호이스콜레’ 체제에 주목한다.
우리말로 ‘민중 대학’ 정도로 번역되는 폴케호이스콜레는 그룬트비가 주창한 ‘삶을 위한 학교’ 사상에 19세기 당시 농민 중심의 정치ㆍ종교 개혁운동이 맞물려 세워진 농민학교가 시초다. 그룬트비가 말한 ‘삶을 위한 학교’는 당시 라틴어학교로 대변되는 특권적 교육에 대항해 모국어를 할 줄 알고 배울 의지가 있는 사람이면 누구든 와서 배우고 상호교류하며 인생의 의미와 자기 성찰에 도달할 수 있는 공간이다.
각성된 농민사회의 자발적 학교 설립 운동을 통해 전국으로 확대된 폴케호이스콜레는 1970년대 ‘발전용 풍차 건설 운동’의 기반이 돼 정부의 원전 도입 계획을 철회시키며 그 변혁적 뿌리를 확인시켰다. 현재는 대학 기능을 겸비한 평생학습 기관으로 자리매김한 폴케호이스콜레와 보조를 맞춰, 프리스콜레(1~7학년), 애프터스콜레(8~10학년) 등 공동체(기숙사) 생활, 자율적 교육과정, 무(無)시험 등의 특성을 공유하는 초ㆍ중등 교육기관도 속속 탄생, 덴마크에는 공교육 체제에 맞서는 견실한 대안형 사립학교 체제가 구축됐다.
책은 폴케호이스콜레가 탄생한 역사적 배경과 과정, 그 철학적 토대를 제공했던 그룬트비의 사상을 서술하는 한편으로 해당 학교들이 실제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는지를 체험기와 취재를 통해 소개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에 출간된 원서를 번역한 터라 현재 상황과 시차가 느껴지는 대목이 적지 않지만 자유학기제 안착의 지혜를 구하는 우리 입장에선 보다 ‘원형’에 가까웠던 시절의 덴마크 교육체제를 접할 수 있는 효과가 있다.
이훈성 기자 hs0213@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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