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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20대 여성 살인사건, "여성혐오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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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20대 여성 살인사건, "여성혐오 범죄"

입력
2016.05.19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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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연히 살아남은 여성입니다."

"17일 새벽 1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서 운이 좋게 살아남았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오늘은 운이 좋아 살아남았지만, 내일은 운이 좋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제는 여성 생존의 문제입니다."

▲ '강남역 20대 여성 살인사건' 피해자에 대한 추모 행렬이 이어지는 가운데, 19일 오후 서울 강남구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시민들이 추모의 쪽지를 붙이고 있다. 임민환 기자 limm@sporbiz.co.kr

19일 오후 찾은 서울 서초구 강남역 10번 출구 외벽은 빈틈이 보이지 않을 만큼 포스트잇으로 뒤덮여 있었다. 포스트잇에는 17일 새벽 1시쯤 서울 강남역 인근 노래방 건물 공용화장실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의 피해자 A씨(23·여)를 추모하고, 여성을 대상으로 한 강력범죄를 비판하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A씨는 강남역 주변 1층 주점에서 일행과 함께 술을 마시던 중 화장실에 다녀오다 다른 칸에 숨어있던 김모(34)씨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사망했다. 가해자 김 씨가 경찰 조사에서 범행 동기로 "여자들에게 항상 무시당했다"고 진술한 것이 알려지면서, 단순 '묻지마 살인'이 아닌 '여성 혐오 범죄'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묻지마 살인' 아닌 '여성혐오 범죄'"

이번 사건의 피해자는 올해 대학을 졸업해서 직장에 들어간 지 2개월이 채 되지 않은 신입사원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피의자 김 씨는 목회자를 준비하던 신학대생이었던 것으로 밝혀졌으며, 경찰조사에서 한 교회에서 운영하는 교리 교육 코스를 다닌 것도 알려졌다. 경찰은 김씨가 정신분열증 진단을 받고 2008년에 1개월, 2011년과 2013년, 2015년에 각 6개월 동안 입원치료를 받은 전력을 확인했다.

김 씨가 경찰 조사에서 범행 동기로 "여자들에게 항상 무시당했다"고 밝힌 사실이 알려지자, '여성 혐오가 묻지마 살인까지 불렀다'는 비판이 터져나오고 있다.

이 때문인지, 강남역 10번 출구의 추모 현장에는 유독 여성들의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단지 여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잠재적 피해자가 돼야 하나요', '살女주세요. 당신은 살아男았죠' 등의 포스트잇 내용으로 이번 사건을 '내 이야기'로 받아들인 여성들의 추모 열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 '강남역 20대 여성 살인사건' 피해자에 대한 추모 행렬이 이어지는 가운데, 19일 오후 서울 강남구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시민들이 추모 쪽지를 보고 있다. 임민환 기자 limm@sporbiz.co.kr

■ 온·오프라인 뒤덮은 추모물결

온·오프라인에서는 이번 사건으로 희생된 A씨를 추모하는 물결이 일고 있다.

18일 오전 8시쯤 트위터 계정 '강남역 살인사건 공론화(@0517am1)'에는 '강남역 10번 출구 국화꽃 한 송이와 쪽지 한 장. 이젠 여성폭력, 살해에 사회가 답해야 할 차례입니다'라는 글이 올라왔고, 계정의 운영자는 트위터에 속속 올라오는 추모 현장의 사진과 글을 리트윗하며 현장을 전했다.

▲ 트위터 계정 '강남역 살인사건 공론화(@0517am1)'

'강남역 10번 출구'라는 페이스북 페이지도 생겼다. 페이지 운영자는 "이 사건은 여성에 대한 혐오범죄"라며 "이 사건을 포함한 여성 혐오범죄에 대해 대응하기 위한 페이지"라고 소개했다.

▲ 강남역 10번 출구 페이스북 페이지

오프라인에서의 추모 열기는 조용하고 뜨거웠다.

19일 오후 2시쯤 찾은 강남역 10번 출구 앞은 소리 없이 엄숙했다. 추모 현장의 한쪽에는 테이블과 펜, 포스트잇이 마련되어 있어 시민들은 출구 벽면에 추모 메시지를 적은 쪽지를 한 두장씩 붙이거나 국화꽃을 바닥에 놓았다.

쪽지에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등의 추모 문구가 많았고, '여성혐오는 사회적 문제다', '남아있는 여성들이 더 좋은 세상 만들게요' 등의 여성혐오를 꼬집는 내용도 담겼다. 쪽지는 이미 벽면을 가득 채운 상태였고, 바닥에 놓인 국화꽃도 몇 겹씩 쌓였다. 시민들이 보낸 근조화환도 한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화환 옆에는 큰 보드판이 마련돼 출구 외벽에 미처 붙이지 못한 쪽지들이 붙어있었다.

▲ '강남역 20대 여성 살인사건' 피해자에 대한 추모 행렬이 이어지는 가운데, 19일 오후 서울 강남구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 시민들이 보낸 근조화환이 놓여있다. 임민환 기자 limm@sporbiz.co.kr

▲ '강남역 20대 여성 살인사건' 피해자에 대한 추모 행렬이 이어지는 가운데, 19일 오후 서울 강남구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 놓인 보드판에 한 시민이 추모 쪽지를 붙이고 있다. 임민환 기자 limm@sporbiz.co.kr

친구들과 추모 현장을 찾은 최 모(23·여)씨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며 "위로의 말을 남기려는데 잘 떠오르지 않아 10분째 멍하니 다른 사람들이 남긴 쪽지를 바라보고 있다"고 말했다.

추모를 하기 위해 충남 온양에서 올라왔다는 조 모(62·남)씨는 "오전 11시부터 세 시간째 추모 현장에 있었는데 외국인들도 그냥 지나치지 않아 현장에 있던 추모객이 영어로 설명을 해주기도 했다"며 "오늘 7시 반에 있을 추모집회에도 친구들과 참석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서연 기자 brainysy@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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