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소유주 소유권 인정 판례 뒤집어
1995년 7월 이후 명의신탁 적용
실소유주, 투자금 반환 청구 가능
부동산 등기 상에 표기된 사람(명의수탁자)이 실소유주(명의신탁자) 허락 없이 부동산을 처분해도 횡령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다른 사람 명의로 부동산을 소유하는 것은 위법임에도 사실상 소유권을 인정하던 지금까지의 판례를 뒤집은 것으로 파장이 예상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9일 공동소유 토지에 저당권 등기를 설정한 혐의(횡령)로 기소된 안모(58)씨 사건의 상고심에서 징역 10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취지로 사건을 대전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부동산실명법을 위반해 맺은 약정의 경우 명의신탁자가 소유권을 갖지 않는다”며 “명의수탁자가 부동산을 임의로 처분해도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즉 명의신탁 자체가 불법이므로 계약은 당연히 무효가 되고, 명의수탁자가 마음대로 처분한다 해도 처벌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 판결은 소송을 통해 처분이 확정된 사건을 제외하고 부동산 실명법이 시행된 1995년 7월 이후 이뤄진 명의신탁에 모두 적용된다. 명의신탁자는 해당 부동산에 대한 소유권은 주장할 수 없지만 명의수탁자 등을 상대로 부동산 구입에 출자한 투자금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
이날 전원합의체 선고 전까지 대법원은 부동산 명의신탁이 불법이라고 해도 ‘선량한 풍속 및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하지 않는 경우’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명의신탁자의 부동산 소유권을 인정해 왔다. 이에 따라 수탁자가 부동산을 임의로 처분하면 횡령죄로 처벌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부동산실명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부동산 명의신탁이 빈번해 신탁자의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며 “이날 판례 변경은 부동산실명법이 사회적으로 자리를 잡은 만큼 엄격히 적용해도 사회적 혼란이 적을 것으로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이날 선고와 함께 2001년 11월부터 2010년 9월까지 횡령 혐의를 인정했던 10건의 대법원 판결을 함께 폐기했다.
안씨는 A씨 등 지인 3명과 함께 2004년 충남 서산시의 논 9,000여㎡를 4억9,000만원에 구입하고 1억9,000만원을 부담한 안씨 명의로 등기를 마쳤다. 안씨는 2007년 지인에게 6,000만원을 빌리면서 A씨 등의 허락을 구하지 않고 논에 대한 근저당권을 설정해 줬으며 2008년에도 농협에 5,000만원을 대출 받고 임의로 근저당권 설정 및 등기를 마쳤다.
검찰은 투자금 비율에 따라 안씨가 논에 대한 지분 61% 상당을 횡령한 것으로 보고 재판에 넘겼다. 1,2심은 A씨 등의 소유권을 인정해 안씨의 횡령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조원일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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