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출신의 명장 로타어 차그로제크(74)가 첫 내한 연주회를 가진 건 1979년 10월 26일이었다. “연주회장이 어디였는지 무슨 곡을 연주했는지는 잘 기억하지 못한다”는 그는 “다만 호텔방에 사흘간 갇혀 있었던 것”만 선명한 기억으로 간직한 채 한국을 떠났다. 다시 한국을 방문한 건 34년이 지난 2013년이었다. 국립오페라단이 국내 초연한 오페라 ‘파르지팔’을 지휘한 그는 바그너 전문 가수와 연출가, 금관악기 연주자까지 공수한 탄탄한 진용을 진두지휘하며 한국 오페라 역사의 중요한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차그로제크가 세 번째 한국 공연에 나선다. 28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서울시향의 정기공연에서 슈베르트 교향곡 8번 ‘미완성’과 말러의 걸작 ‘대지의 노래’를 지휘한다. 차그로제크는 19일 한국일보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두 작품은 평화로운 죽음(슈베르트)과 변용(말러)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말러의 작품들은 19세기 말의 훌륭한 철학적 사상과 천국에 대한 갈망,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 죽음에 대한 두려움, 체념을 담고 있죠. ‘대지의 노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이번 공연에서 슈베르트와 말러가 이야기하는 두 가지 다른 방식의 이별에 대해 듣게 될 겁니다.”
한스 스바롭스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등 전설적인 거장들에게 지휘를 배운 그는 유럽 유명 극장들의 상임 지휘자를 두루 맡으며 활동 반경을 넓혀왔다. “그들에게서 악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즉 악보를 통한 곡 분석이 작품 해석에 얼마나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지, 큰 집단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를 배웠다”는 그는 “독일에서 지휘자가 되기 위해서는 오페라하우스에서 성악가들과 작업하는 피아노 연주자부터 시작해야 한다. 오케스트라 리허설을 지휘하며, 후에 차츰 공연까지 지휘하게 되기 때문에 오페라 작품들을 자연스럽게 접하고 다른 작품으로 이어간다”고 설명했다.
한국 공연은 단 두 번이었지만, 한국과의 인연은 훨씬 각별하다. 작고한 윤이상(1917~1995)의 벗이었던 그는 윤이상 구명 탄원에 앞장섰고, 윤이상으로부터 ‘대관현악을 위한 무용적 환상’이라고 불리는 ‘무악’(1978)을 헌정 받았다. “1970년대 초 윤이상을 처음 만났다”는 그는 “독일 북부 키엘이라는 도시에서 오페라 합창 지휘자로 있을 때 윤이상의 오페라 ‘영혼의 사랑’을 세계 초연했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독일 졸링겐의 음악감독이 되어 베를린에서 진행된 윤이상의 작곡 클래스에 초청돼 제 오케스트라와 2주간 워크숍을 가졌죠. 당시 학생들 중에는 현재 활동 중인 일본 작곡가 호소카와 도시오도 있었습니다.”
서울시향과 호흡이 처음인 차그로제크는 “2014년 오스트리아 그라페네크 페스티벌에서 정명훈이 지휘했던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을 감상한 적이 있다”며 “그 연주가 정말 훌륭했기 때문에 이번 공연에 대한 기대가 크다”고 덧붙였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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