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현동 골목의 행화탕
찜질방ㆍ고급 스파에 밀려나고
재개발 지역 확정되며 문 닫아
젊은 예술가들 의기투합해
전시ㆍ공연 현장으로 활용키로
‘2년 시한부 프로젝트’로 부활
1976년 서울 마포구 아현동에 문을 연 동네 목욕탕 ‘행화탕’. 좋은 시설을 갖춘데다 수질도 뛰어나다는 소문이 나 많은 사람들이 찾았던 이곳은 오랜 시간 동안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도 톡톡히 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찜질방과 고급 스파 등의 인기가 높아짐에 따라 때를 미는 게 전부인 소박한 동네 목욕탕을 찾는 사람들은 줄기 시작했다. 이어 2011년 아현동 일대가 재개발 지역으로 확정되면서 결국 행화탕은 문을 닫았다.
이후 수년 동안 주변에 들어선 신축 아파트와 오피스텔 숲 사이에 방치돼 있던 행화탕이 지난 15일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해 문을 열었다. 이날 오후 3시에 시작된 개관식에는 악천후에도 불구 예술가들과 동네 주민들 200여 명이 참석해 목욕탕의 새로운 시작을 축하했다.
욕조 등 목욕시설 등이 정리돼 텅 빈 채 버려졌던 행화탕의 가능성은 올해 초 젊은 예술가들에 의해 재발견됐다. 다양한 예술 작품들을 선보이기 위한 복합문화공간을 찾던 축제기획사 축제행성의 서상혁, 주왕택 공동대표는 행화탕을 보자마자 “여기로 하자”고 합의했다.
올해로 완공 50년을 맞은 행화탕은 지붕부터 전기배선까지 손봐야 할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니었고, 켜켜이 쌓인 먼지들로 자칫 음침해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젊은 예술가들의 눈에는 그저 “예술 프로그램을 채워 넣기에 환상적인 공간”으로만 보였다. 그들은 공간을 함께 채워갈 기획자 8인을 더 모아 ‘행화탕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최종 10인으로 구성된 기획단의 명칭은 행화탕의 지번 주소(613-11)를 딴 ‘61311’로 정했고, 건물 이름도 행화탕 그대로 유지했다. “추억과 역사가 고스란히 깃들어 있는 공간을 이어가자”는 의도에서였다.
탈의실, 목욕탕, 사우나실 등 기존의 공간을 최대한 살린 행화탕은 이후 시각예술, 연극, 출판, 건축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기획자들의 전시와 공연, 교육 등으로 채워진다. 또한 저렴한 가격으로 대관료를 책정해 창작자, 기획자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열린 공간으로 다가가고자 한다. 서상혁 대표는 “예전처럼 많은 사람들이 행화탕이라는 장소를 매개로 교류하길 바란다”며 “오고가는 사람들 속에서 노년기에 접어든 이 건물도 또 다른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 재개발과 관련한 구체적 일정은 없다. 그러나 정주민과 이주민의 거주 지역 접점에 위치한 만큼 건물은 머지 않은 때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재개발까지 2년을 염두하고 “곧 끝날 것”이라는 생각으로 뭉쳤기에 기획자들에게 행화탕은 더욱 특별하다. 서 대표는 “(건물이)시한부 삶을 살고 있는 만큼 하루하루 더 알차게 채워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포부와 함께 “언젠가 찾아올 건물의 장례식은 한바탕 축제처럼 치러지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을 드러냈다.
전시는 매주 수~일요일 오후 2시, 4시에 열리며, 전시 및 공간투어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행화탕 페이스북(facebook.com/haenghwatang)에서 사전 예약을 해야 한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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