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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분투기] 다시 살충제를 뿌리며

입력
2016.05.19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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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제조 기업 처벌 촉구 옥시상품 불매 선언 시민사회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옥시 불매 운동을 선언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배우한기자 bwh3140@hankookilbo.com
지난달 25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제조 기업 처벌 촉구 옥시상품 불매 선언 시민사회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옥시 불매 운동을 선언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배우한기자 bwh3140@hankookilbo.com

아이 엄마가 유난을 떠는 게 싫었다. 몇 달 전에는 샴푸 성분이 체내로 흡수된다는 신문 기사를 읽더니 아직 반이나 남아 있던 샴푸를 버리고 친환경 샴푸로 바꿨다. 대형마트에서 파는 샴푸보다 족히 세 배나 되는 가격이었다. 며칠 전에는 작은 다툼도 있었다. 날씨가 더워지니 날벌레가 많아져 집안 곳곳에 살충제를 뿌려 뒀더니 모기보다 더 위험한 것이 살충제라며 구박을 하기에 그만 참지 못하고 “유난 좀 그만 떨어”라고 했던 것이 빌미였다. 별 해가 없으니까 이렇게 팔고 있는 것일 텐데, 전문가들이 검증했다고 해도 믿지 않는 아내가 솔직히 가끔은 피곤했다.

아내의 호들갑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지난 연말에는 방사선량을 측정하는 선량계까지 구해왔다. 그리고는 일본에서 온 것으로 생각되는 집안 살림 하나하나에 선량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우리 정부가 괜찮다고 했기 때문에 통관이 된 것이라고 해도 아내의 호들갑을 돌려세울 수는 없었다. 일본산 피아노부터 측정을 시작해 일본에서 가져온 내 책까지 모두 검사대상이었다. 물론 기준치 이상은커녕 조금의 방사선도 검출해낼 수 없었다.

얼마 전부터는 식탁에서 아이가 좋아하는 어묵 볶음도 사라졌다. 어묵 제조 과정에서 사용되는 전분이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만들어진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마트에서 사은품으로 받은 어묵 한 봉지를 그대로 버리는 것을 보고 있자니 아까웠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이 엄마가 불필요하고 비합리적인 의심을 하는 것 같았다. 전분 공장이 그렇게 비위생적이라면 벌써 문을 닫았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의심하면 먹을 수 있는 음식은 하나도 없지 않을까.

위험한 물질을 생산하고 판매해도 공장과 마트는 문 닫지 않는다는 것을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사망한 사람이 200명이 훨씬 넘고, 피해자도 1,,500명이 넘는다는 것을 보고서야 알았다. 아마 집계가 되지 않은 피해 규모도 상당할 것이다. 내가 일하는 회사에서, 자주 가는 식당은 물론, 아이와 자주 가는 소아과, 아이가 다녔던 어린이집, 지금 다니는 유치원, 아파트 실내 놀이터와 트렘펄린이 있어 아이가 좋아했던 키즈 카페에도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을지 모른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보도가 한창이던 어느 날에는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 전화해볼까 하다 말았다. “그동안 유치원에서 가습기 살균제를 쓴 적 있나요?” 유난스럽다고, 호들갑 떤다고 비웃을까 봐 그만두기로 했다.

서경식과 정주하 외 여러 사람이 참여한 대담을 엮은 책 ‘다시 후쿠시마를 마주한다는 것’을 보면,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해서 그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오히려 ‘후쿠시마는 정부의 주도로 완벽하게 컨트롤되고 있다’는 정부의 공공연한 거짓말에 보통의 시민들까지 호응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거기에는 이 중대사고가 경제 상황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어른들의 이기심’이 작동하고 있다. 나라와 전문가와 기업은 우리의 안전을 지켜주기는커녕 사실상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그렇게 일상은 계속되고, 아무 일 없는 듯, 유난스럽지 않게, 호들갑 떨지 않고 사람들은 살아가지만 태연한 표정 뒤에는 ‘두려움’이 생겨났다.

다시 살충제를 뿌리고, 설거지하고, 아이와 샤워를 하고, 로션을 발라 주고, 함께 사과를 먹었다. 아무렇지 않은 듯이 살충제를 뿌렸지만 예전처럼 마음이 편하지 않다. 설거지하는 중에 뒤편의 성분표시를 꼼꼼하게 읽어봤고 아이 입으로 들어가는 사과를 보며 미처 씻겨 내려가지 않은 농약에 대해 생각했다. 늘 하던 대로 아이 몸에 로션을 바르며 TV에서는 내일 미세먼지농도가 높다는 뉴스를 듣는다. 울리히 벡이 현대사회를 “위험 사회”로 부른 것도 과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유난스러워진 것일까.

아내는 오랜 투병 생활을 하던 아버지를 간호하며 정부도, 의사도, 회사도 우리를 지켜 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안전을 위해 국가와 사회계약을 맺는다는 말이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도. 가습기 살균제로 피해를 본 가족의 인터뷰를 보며 아내는 몸을 떨며 울었다. 때로는 유난과 호들갑도 피해자들의 고통과 연대하면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지 않을까.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다.

권영민 ‘철학자 아빠의 인문 육아’ 저자ㆍ철학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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