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로서의 경험 덕에
부족한 의료체계 절감
1년 전과 똑같이 그는 병원 응급실에서 환자를 돌보고 있었다. 달라진 것은 지난해 레지던트 1년 차에서 2년 차가 된 것뿐이다. 조현별(33) 강동경희대병원 응급의학과 레지던트. 그는 지난해 6월 5일 엉덩이뼈 골절로 병원 응급의료센터를 찾은 메르스 76번(75ㆍ여ㆍ사망) 환자를 돌보다 메르스에 감염됐다. 11일 후 메르스 확진을 받아 ‘160번 환자’가 됐다.
조씨를 인터뷰하긴 쉽지 않았다. 응급실에서 격일로 24시간 근무해야 해 시간도 빠듯한데다, 메르스 환자였다는 걸 드러내는 일이 반가울 리 없기 때문이다. 메르스에 걸렸던 간호사가 이후 결혼하면서 남편에게도 이 일을 알리지 않았을 정도로 당사자들에게 메르스는 잊고 싶지만 평생 잊지 못할 아픈 기억이다.
지난 17일 병원 응급의학과 의국에서 만난 조씨는 응급실에서 76번 환자를 만난 날을 또렷이 기억했다. “오후 3~4시쯤이라 오전이나 밤보다 응급실이 덜 붐볐어요. 다른 의사들처럼 저도 그분이 메르스 환자일 거라곤 전혀 생각지 못했습니다.” 바이러스를 옮긴 76번 환자에게 서운하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그는 “응급실에서 일하는 의사이기에 숙명이라 생각했다”며 “그 분이 메르스로 인해 세상을 떠나셔서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76번 환자가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지난해 6월 7일 조씨는 스스로 자택격리생활을 시작했다. 사실 그는 메르스보다 장염을 의심했다. 최종적으로 메르스 확진을 받은 조씨는 서울시립 서북병원을 거쳐 서울의료원 격리병동에서 치료를 받았다.
“상태가 심각하지 않아 큰 부담을 느끼진 않았죠. 하지만 매일 먹어야 하는 약이 독해 고생했습니다. 휴대폰으로 관련기사를 검색한 뒤 제가 ‘160번 환자’라는 걸 알게 됐죠. 의사 가운을 벗고, 감염병 환자가 돼 격리병동에서 치료를 받으면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응급의학과는 전공의들이 선호하는 진료과는 아니다. 하지만 조씨는 인턴 근무 첫 달 응급실에서 일하면서 응급의학과로 마음을 정했다고 한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환자를 보는 것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힘들지만 다양한 환자를 접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부모님은 내과, 외과 등 외래진료를 보는 쪽을 바라셨는데 죄송하죠. 하지만 후회는 없어요.”
/조현별 레지던트가 지난해 6월 5일 76번 메르스 환자를 치료했던 자리에 서있다. 강동경희대병원 제공
완치 후에도 그는 한 달 넘게 환자를 만날 수 없었다. 메르스 여파로 병원이 전면 폐쇄됐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은 의료체계에 대한 근본적 고민으로 이어졌다. “메르스 사태 이후 우리 병원에서 환자 안전과 감염 예방을 위해 보호자 1명만 응급실 출입을 하게 하고, 음압격리실을 확충하는 등 노력을 하고 있지만 시설과 인력이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대규모 감염 사태가 발생했을 때 환자들을 집중치료 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죠.”
의사로서, 환자로서 메르스 사태를 온몸으로 겪으면서 직업관도 가다듬게 됐다. “아직 경험이 부족하지만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의사가 돼 환자에게 인정받아야죠. 더불어 환자를 보는 것이 즐거운 의사가 돼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메르스 사태는 말로만 환자중심 병원을 외쳐 온 국내 의료계에 많은 숙제를 남겼다. 갈 길이 멀지만 그 숙제를 마다하지 않을 것 같은 청년의사를 만나 희망을 발견했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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