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출구에 포스트잇 빼곡
“단지 여자란 이유만으로…”
종일 온·오프라인 자성 목소리
서울 서초구의 한 노래방 건물 화장실에서 안면도 없던 여성 혐오 성향의 남성에게 ‘묻지마 살인’을 당한 A(23ㆍ여)씨에 대한 추모 물결이 번지고 있다. 일부 네티즌이 피해 여성을 비꼬는 여성 폄하 악성 댓글을 달면서 반발을 샀고, 여성혐오론에 대한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18일 오후 사건 장소 인근인 서울 지하철 강남역 10번 출구 앞은 A씨 추모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날 오전부터 강남역 출구 외벽에 포스트잇 추모 문구가 붙기 시작했고, 바닥에는 추모 국화꽃 수백 송이가 놓였다. 오후 6시쯤에는 밀려드는 추모 인파에 더 이상 포스트잇을 붙일 곳이 없을 정도였다.
앞서 17일 새벽 1시 강남역 인근 건물 화장실에서 피의자 김모(34)씨가 A씨를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교회 등 사회생활을 하면서 평소 여성들에게 자주 무시를 당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소식이 보도되자 일부 네티즌들은 댓글을 통해 ‘여자가 그 시간에 술이나 먹고 다니는 게 문제’ 라거나 ‘여자들이 X쳐서 여성 혐오 걸린 것. 여자들은 애 낳고 밥이나 하는 게 맞다’ 등의 피해 여성 비판 댓글을 달아 공분을 샀다. 이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여자가 새벽에 노래방을 간 게 핵심이 아니라 남성의 여성혐오 범죄가 문제’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퍼져나갔다.
여성혐오에 대한 반발과 피해 여성 추모는 오프라인에서도 이어졌다. 시민들이 붙인 포스트잇에는 고인의 명복을 비는 글과 함께 ‘단지 여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잠재적 피해자가 돼야 하나요’, ‘살女주세요. 당신은 살아男았죠’ 등의 내용이 담겼다.
현장을 찾은 시민들도 한국 사회 일각의 여성혐오 분위기를 비판했다. 회사원 오효주(33·여)씨는 “여성에 대한 혐오가 폭력의 사유일 수는 없다. 여성혐오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호진(25)씨도 “‘묻지마 살인’이라는 표현은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말이기 때문에 ‘여성혐오 살인’이라고 말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강남역을 찾아 희생자를 추모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자신의 트위터에 ‘슬프고 미안합니다’라고 글을 올렸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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