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메르스에 혼쭐나고도... 눈도장찍기 병문안 바뀌지 않았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메르스에 혼쭐나고도... 눈도장찍기 병문안 바뀌지 않았다

입력
2016.05.19 04:40
0 0

“메르스 확산 원인” 지적 불구

여전히 우르르 맘대로 면회

‘오후 6~8시’ 시간 지키고

문안 메시지 전달 서비스

문병객 전용공간 설치 등

일부 병원선 개선 보이기도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병문안 온 환자의 가족과 지인들이 병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병문안 온 환자의 가족과 지인들이 병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 “문병은 오후 6시에서 8시까지만 가능합니다.” “시골 집으로 돌아가는 차편 마감시간이 빠듯한데 조금 일찍 올라가면 안 돼요?” 며칠 전 오후 5시 10분. 면회시간을 50분 앞두고 서울의 한 대학병원 병동 엘리베이터 앞에서 지방에서 온 면회객들과 보안요원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목소리를 높인 면회객들은 결국 자신들의 바람대로 병실로 향했다.

#2 며칠 전 밤 11시. 뇌출혈을 일으킨 50대 남성이 서울 강남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로 실려왔다. 환자 가족이 응급실에 들어갔는데, 같이 온 지인들까지 들여보내 달라고 막무가내로 떼를 썼다. 환자의 지인은 막아 서는 병원 보안요원을 20여 분간 밀치고 뺨까지 때리는 등 소란을 피웠다.

“눈도장 찍기 식 병문안은 환자를 위한 것도, 문안객을 위한 것도 아닙니다. 이런 생색내기 문화가 사라지지 않으면 제2, 제3의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가 오지 말라는 법이 없지요.”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병원 감염내과 교수의 푸념이다.

지난해 온 국민을 공포로 몰아넣은 메르스 사태 당시 아는 사람이 입원하면 줄줄이 병실을 찾는 한국적 병문안 문화가 메르스 확산 원인의 하나로 지적됐다. 세계보건기구(WHO) 합동평가단의 진단도 마찬가지였다. 이후 병원들은 홈페이지, 입원환자용 안내서 등을 통해 문병시간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통제하고 있지만 병문안 문화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안정을 취해야 하는 환자와 밤잠을 설치며 환자를 돌봐야 하는 가족 입장에서는 문병객들의 잦은 방문이 부담스럽지만, 호의를 마냥 거절하기도 쉽지 않다. 나만 바뀐다고 될 일이 아니다. 다인실에선 옆 환자의 문병객으로 인한 소음이 신경을 긁는 일이 다반사다.

응급실 상황도 다르지 않다. 시장통처럼 붐볐던 응급실이 메르스 확산을 부추겼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보호자 등의 출입 제한이 이뤄졌지만 금세 뒷걸음질쳤다. 한 대학병원 응급실 의사는 “메르스 사태 당시에는 환자와 보호자들도 의료진 통제에 따라 병원 출입 제한 등 지침을 잘 따랐다"며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원 상태로 돌아가는 듯하다”고 했다.

다행히 희망의 싹이 트고 있다. 병원들이 정부 권고에 따라 오후 6~8시에만 병문안을 하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병문안 대신 쾌유를 기원하는 글을 담은 카드, 모바일 메시지를 환자에게 전달하는 서비스를 시작한 병원도 있다. 문병객이 병실까지 들어가지 않도록 전용 공간을 만든 곳도 있다. 한 대학병원 심뇌혈관질환 병동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는 “안정이 필요한 환자가 많다 보니 면회시간 제한에 대한 환자와 보호자의 만족도가 높다”며 “불편하다는 반응을 보이던 분들도 퇴원할 때 공감한다는 말을 많이 한다”고 전했다.

지난해 메르스 직격탄을 맞은 삼성서울병원이 환자들의 감염 위험을 줄이기 위해 보호자출입증 가진 사람만 출입시키고 있다. 삼성서울병원에 설치된 슬라이딩도어의 모습. 삼성서울병원 제공
지난해 메르스 직격탄을 맞은 삼성서울병원이 환자들의 감염 위험을 줄이기 위해 보호자출입증 가진 사람만 출입시키고 있다. 삼성서울병원에 설치된 슬라이딩도어의 모습. 삼성서울병원 제공

메르스 사태 직격탄을 맞았던 삼성서울병원은 모든 병동에 출입문을 설치, IC칩이 내장된 출입증을 가진 보호자 1인만 출입을 허용했다. 병문안 시간도 크게 줄였고, 면회시간이 아니면 엘리베이터 이용도 제한하도록 보안요원을 곳곳에 배치했다.

이 병원은 응급실 이용 규정도 대폭 바꿨다. 지난 18일 오전 병원 응급실 앞에서는 보안요원들이 응급실을 찾은 환자에게 “선별 진료실을 먼저 다녀와야 한다”며 별도 건물에 들어선 발열호흡기진료소를 가리켰다. 진료소 내 선별 진료실에서 가운과 마스크 등 보호구를 쓴 의료진이 메르스나 지카바이러스 발생 국가를 다녀온 적이 있는지, 감염병 관련 증상이 있는지 확인 후 이상이 없다는 판정을 해야 응급실에 들어갈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감염병이 의심되면 진료소 내 음압격리실로 이동해 응급진료를 받은 뒤 국가지정 격리병원으로 이송되고,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다른 일반 환자의 노출이 없도록 병원 안에 새로 만든 음압격리병동에서 치료가 진행된다. 병원 관계자는 “응급실은 다양한 질환으로 환자들이 찾는 곳인 만큼 언제나 긴장을 늦출 수 없다”며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대한 유입 경로를 차단하고 관리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설명했다.

박상근 대한병원협회 회장은 “한국식 병문안 문화는 메르스 사태가 아니라도 오래 전에 바꿨어야 할 문제”라며 “안전한 병문안 문화를 만들고, 감염병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려면 의료기관, 정부, 국민 모두가 뜻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