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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의 길이냐, 원유철의 길이냐

입력
2016.05.1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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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정진석… 선택은

광주서 상경 중 공주역 하차 ‘칩거’

“상상도 못 한 일에 큰 충격 받아…

당 쇄신 임무 계속해야 할지 고민”

劉처럼 혁신 소신 지켜며 사퇴?

元처럼 靑-친박계 보조 맞추기?

두 갈래길 압박 속 장고 들어가

18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묘역을 살펴보고 있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18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묘역을 살펴보고 있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18일 서울을 떠나 지역구(충남 공주·부여·청양)에서 숙고를 시작했다. 집단 보이콧으로 비상대책위와 혁신위 구성 논의 자체를 무산시킨 친박계에 책임을 물으며 ‘버티기’에 들어간 것이다. 여권 일각에선 정 원내대표가 사실상 청와대를 향해 ‘꼭두각시는 되지 않겠다’는 시그널을 날렸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정 원내대표는 이날 광주 국립 5ㆍ18 민주묘지에서 열린 5ㆍ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뒤 KTX를 타고 서울로 향하던 중 갑자기 공주역에서 내렸다. 정 원내대표는 기자들에게 “집권 여당에서 상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져 큰 충격을 받았다”며 “상임전국위와 전국위 무산의 의미가 무엇인지 판단이 안 선다”고 말했다. 이어 “내게 주어진 당 쇄신과 당 지도부 구성 임무를 계속해야 할지 고민”이라며 “생각을 좀 가다듬어야겠다”고 덧붙였다. 임시지도부 구성조차 막은 친박계 책임론을 제기하며 당무에서 당분간 손을 떼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전날 벌어진 새누리당 상임전국위와 전국위의 의사정족수 미달 사태는 정 원내대표에겐 임기 중 당청 관계를 좌우할 만한 사건이다. 회의에 조직적으로 불참해 비박계 중심의 비대위와 혁신위 구성을 불발시킨 친박계의 배후에는 청와대가 있다는 게 당내 관측이다. 여권에선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이 정 원내대표에게 구체적인 의원 명단까지 건네며 ‘친박 비대위’와 ‘친박 혁신위원장’ 구성을 압박했다는 얘기까지 돌고 있다. 정 원내대표가 이 같은 요구를 무시하고 되레 비박계와 개혁성향 의원들로 비대위와 혁신위원장을 꾸리자, 청와대와 친박계가 실력행사에 나섰다는 것이다.

정 원내대표는 이날 공주에서 기자들과 만나 계파 안배를 하지 않았다는 친박계의 지적에 대해 “계파 개념을 두고 인선한 적 없다”고 반박했다. 그는 ‘비대위 인선에 계파 안배 요구를 반영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하여튼 수습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면서도 “계파 때문에 일이 이 지경이 된 것 아니냐. 언제까지 ‘계파 계파’ 할 것이냐. 계파 정치를 어떻게 다른 방향으로 좀 돌려보라는 과제가 나에게 주어진 것 아니냐”고 답했다. 정 원내대표는 그러나 ‘내일 당무에 복귀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즉답을 피했다. 측근들도 19일에는 별다른 일정이 잡힌 것이 없다고 전했다. 당분간 칩거가 길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다.

정 원내대표가 친박 패권주의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만큼 관심은 다음 수로 모아지고 있다. 일단 지난해 유승민 의원이 박근혜 대통령의 ‘배신의 정치 심판’ 발언으로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이후 후임에 오른 원유철 전 원내대표가 친박계와 보조를 맞춘 전철은 따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여권 인사는 “정 원내대표가 청와대나 친박계의 요구를 받아들였다면 ‘원유철의 길’을 가게 됐을 텐데 이를 거부하니 친박계가 ‘유승민처럼 되려느냐’며 길들이기를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당내에선 청와대와 친박계에 일단 선을 그은 정 원내대표가 당분간 냉각기를 가지리란 전망이 우세하다. 비대위원에 내정됐던 한 당선자는 “시간이 흐를수록 지도부 공백사태를 초래한 친박계 책임론이 더욱 부각될 것”이라며 “시간은 정 원내대표의 편”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정 원내대표의 비대위 인선안에 친박계를 보강하는 선에서 물밑 협상이 이뤄지리란 관측도 있다. 이 경우 당 혁신은 전당대회 시점을 앞당겨 새 지도부에 맡길 가능성이 높다.

김지은 기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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