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리 슈틸리케(62ㆍ독일) 국가대표 감독이 유럽리그 소속 선수들을 조기 소집해 특별훈련을 시킨다고 한다. 대표팀은 6월 1일(한국시간) 스페인, 5일 체코와 유럽 원정 평가전을 치른다. 이미 시즌을 마친 유럽리그 소속 선수들이 최근에 경기를 많이 못 뛰어 감각이 떨어져 있으리라는 판단에 출국 전까지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에서 대표팀 코칭스태프가 훈련을 지휘한다는 것이다.
문득 2년 전 불거진 ‘황제훈련’ 논란이 떠오른다.
2014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 박주영(31ㆍFC서울)이 발가락과 발등에 봉와직염에 걸렸다가 회복했다. 당시 소속 팀에서 거의 게임을 뛰지 못한 그를 위해 이케다 세이고 대표팀 피지컬 코치가 나섰다. 박주영은 NFC에서 따로 재활과 훈련을 병행했다. 어디선가 ‘황제훈련’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선수 한 명을 위한 특혜라는 지적이다.
하지만 이런 맞춤 훈련은 처음이 아니었다. 2011년 여름 조광래 전 대표팀 감독도 당시 팀을 찾지 못하던 박주영을 조기 소집해 파주에서 훈련시킨 적이 있다. 유럽에서 뛰는 선수와 K리그에서 뛰는 선수의 소집 시기를 달리해 한 쪽만 먼저 불러서 대표팀 훈련을 하는 것도 종종 있는 일이다. 국가대표 소속 선수가 대한축구협회의 양해 아래 NFC에서 담금질하는 건 논란이 될 사안이 아니다. 하지만 박주영에게만 유독 ‘황제’라는 딱지가 붙었다. 홍명보 전 대표팀 감독의 선수 선발이 ‘의리’라는 프레임에 갇혀 돌팔매질을 당한 것과 같은 연장선상이었다.
홍 감독을 옹호하려는 게 아니다.
홍 감독이 지난 3월 항저우를 방문한 축구전문 온라인 매체 풋볼리스트와 인터뷰에서 “대표팀을 맡으면서 국민들이 원하는 월드컵 16강이라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걸 알았지만 사명감에 수락했다. 그래서 축구협회에 월드컵을 마치고 아시안컵까지 한 번의 기회만 더 달라고 미리 제안했다”고 말한 걸 봤다. 선뜻 동의하기 힘들다. 홍 감독은 월드컵 전 기자들과 비공개 간담회에서 “월드컵? 안 좋으면 반드시 내가 책임진다”고 말했다. 촉박한 기간, 홍 감독 부임 전 이미 내부적으로 팀이 분열돼 있었던 상황 등 경기 외적인 어려움이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고 본다. 그가 등 떠밀리듯 물러나기 전에 월드컵 직후 곧바로 사퇴해 책임지는 모습을 보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월드컵 결과나 홍 감독 사퇴 시기를 차치하고 대회 전 대표팀을 향한 비난의 수위는 분명 도를 넘었다. 감독의 선수 선발을 마구잡이로 ‘의리’라고 조롱하고 무시했다. 선수의 컨디션을 올리기 위한 훈련을 ‘황제훈련’으로 매도했다. 팬들이야 각자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 쳐도 언론까지 무분별하게 동참한 건…. 당시 비난 행렬을 되짚어 보면 광기(狂氣)마저 느껴졌다. 개인적으로는 중심을 잡고 기사를 썼다고 자위하지만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는 물줄기를 되돌리지도 못했다. 반성하고 책임을 느낀다.
광기 어린 여론, 그 안에서 언론의 역할을 되새기게 하는 ‘황제훈련’의 기억이다.
윤태석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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