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연한 법조비리 상상 초월하는 수준
공무원 행동강령, 김영란법 있으나마나
비리 시스템은 중산ㆍ빈곤층 붕괴 초래
영국 런던비즈니스스쿨(LBS)의 교수가 뇌물 관행이 어느 정도 퍼져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기업 관리자 대상 수업에서 설문조사를 했다. 교수는 “정부 계약을 따내기 위해 뇌물을 준 적이 있으면 손을 들어보라”고 했더니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그래서 질문을 바꿨다. “경쟁자들이 뇌물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거의 모든 관리자가 손을 들었다. 미국 경영학자 필립 코틀러의 저서 <다른 자본주의ㆍConfronting Capitalism>에 소개된 얘기다. 뇌물 수수 관행이 퍼져 있지만,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다.
건설 담당 부처를 출입할 때 지방청에서 건설 발주를 경험한 고위 공무원이 자랑스럽게 한 얘기가 있다. 일단 건설업자가 사무실에 찾아오면 만나주지 않고 바깥에서 기다리라고 한다. ‘업자 길들이기’다. 두어 시간을 기다리면 업자들이 지치고 초조해진다. 그때쯤 불러들여 딴청을 피우며 거들먹거리는 것이다. 만나기 쉽지 않은 까칠한 공무원이라는 인상을 줘야 한다. 그래야 무서워하고 접대를 제대로 한다.
하지만 공직사회에 자정 바람이 불면서 수법이 바뀌었다고 했다. ‘돈이 될 만한’ 업자나 민원인이 오면 오히려 성심성의를 다한다. 과다할 정도로 몸으로 부딪히면서 해결해준다. 미안해서라도 더 큰 사례를 하게 하는 수법으로 민원인에게 부담을 주기는 마찬가지다. 직접 목격한 사례도 있다. 건설업자, 국회의원 등과 골프를 했을 때다. 클럽하우스에서 저녁을 먹은 뒤 헤어지려는데 건설업자가 국회의원에게 봉투를 건넸다. 잠시 등을 돌린 사이에 건네는 것을 무심코 돌아서다 본 것이다. 아직은 현직인 그 국회의원은 “선거 때 돈을 많이 썼어요”라며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사회에 접대문화나 뇌물수수가 여전히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대기업에서 대관업무를 하는 친구 얘기로는 예나 지금이나 공직자들은 별반 변한 것이 없고, 조금 조심할 뿐이란다. 그는 술과 골프 접대로 ‘저녁과 주말이 없는 삶’을 산다고 했다. 공무원 행동강령이나 ‘김영란법’ 같은 건 앞으로도 “있으나마나”라고 했다. 물론 접대에 나서는 기업도 얻는 것이 있으니 하는 짓일 게다.
뇌물이 만연한 사회는 부패한 사회다. 부패한 사회는 결국 과다한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된다. 지금 우리 사회가 부패로 몸살을 앓고 있다.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원정도박을 둘러싼 전관예우 사건이 대표적이다. 일반 서민들은 평생 만져보지도 못할 뭉칫돈이 전직 판검사는 물론 현직들 사이에 흘러 들어갔다는 의심이 일고 있다. 군(軍)이나 공공기관도 예외가 아니라니 어이가 없다. 진경준 검사장의 편법주식 취득 논란도 그렇다.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으로도 법조비리는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대우조선해양의 부실 사태는 은행권과 정치권의 고질을 여실히 드러낸다. 낙하산들이 주인 없는 대우조선해양을 피라냐처럼 뜯어먹어 결국 껍데기만 남겨놓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할 수 없다. 부실은 고스란히 국민이 떠안는다. 조선과 해양의 부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구조조정이 필수다. 문제는 비용이다. 현재 국책은행의 구조조정을 위한 확충펀드 규모는 10조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돈을 찍어내든, 세금을 걷든 최종적으로 국민부담이기는 마찬가지다. 10조원이면 5,000만 인구 1인당 20만원, 4인 가족 기준 80만원에 이르는 액수다. 아무런 죄 없는 국민이 왜 이런 부담을 걸머져야 할까.
코틀러는 “뇌물과 부패는 경제성장을 지연시키고 민주주의에 걸림돌이 된다”고 지적한다. 정직한 기업과 시민은 사업과 통상업무를 처리하기 위해서 급행료를 지불하는 등 불필요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 결과 효율적ㆍ합리적 거래가 실종되고, 자원 배분의 왜곡 현상이 일어난다. 부패한 경제체제는 결국 중산층을 붕괴시키고, 빈곤층을 더욱 나락에 빠뜨리는 승자독식의 ‘카우보이 자본주의’(cowboy capitalism)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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