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자판기 달린 화상전화로 약사 상담 뒤 의약품 구입 가능”
의료계 “사고 때 책임 불분명·기계 오작동·의약품 변질 우려”
정부, 난치병 신약 건보 적용 전 무상·저가로 환자에 공급 추진도
정부가 화상 전화가 달린 의약품 자동판매기 설치를 허용하기로 해 논란이 일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원격화상 의약품 판매시스템을 허용하는 내용의 약사법 개정안을 10월 발의할 예정이라고 18일 밝혔다. 의약품 자동판매기가 설치되면 환자는 원격화상 통신기기가 달린 판매기를 통해 약사와 상담하고 복약지도를 받은 뒤 처방전 없이 구매 가능한 일반의약품을 구입할 수 있게 된다. 최봉근 복지부 약무정책과장은 “약국이 문을 닫았을 때에도 약을 살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라며 “설치 범위에 대해서는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제5차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이 내용을 보고했다.
의료계와 의료시민단체들은 “국민의 건강권을 박탈하는 일”이라며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약사회 등 의료단체들은 이날 성명서를 내고 “약화사고 시 책임소재가 불분명하며 기계 오작동, 의약품 변질 등의 우려가 크다”며 “기업의 이윤추구만을 위한 규제완화 시도에 반대한다”고 반발했다. 백용욱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사무국장은 “대면 진료와 대면 복약지도의 중요성을 정부가 모를 리 없는데 원칙을 거스르려 하고 있다”며 “감기약 등을 무분별하게 복용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많은데 자판기까지 허용되면 약물 오남용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전에도 일부 약사들이 의약품 자판기를 도입하려 했으나 의약품을 약국에서만 판매토록 한 약사법 때문에 포기했다. 현행 약사법에 따르면 약국 개설자 및 의약품 판매업자는 약국 또는 점포 이외의 장소에서 의약품을 판매할 수 없다.
이 밖에도 난치병 치료에 쓰이는 고가의 신약을 건강보험에 적용되기 전 무상 또는 저가로 환자에게 공급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난치성 질병 치료에 사용되는 의약품 가운데 효과나 안전성이 월등히 개선된 제품이 대상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는 “건강보험 약가를 신청한 뒤 평가가 끝날 때까지 1년 이상이 걸리는데, 그 전에 환자에게 약을 저가로 공급할 경우 공정거래법에 위배될 소지가 있었다”며 “제도 개선을 통해 환자들에게 경제적 부담을 경감해주고 치료 기회를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뇌졸중, 알츠하이머 등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에 사용되는 치료제도 임상 2상만 마치고 환자에게 사용할 수 있도록 조건부 허가가 가능해진다. 기존에는 항암제, 자가연골 세포치료제 등에 한해 조건부 허가제도를 운영해왔다. 조건부 허가제도란 향후 3상 임상시험(대규모 환자를 대상 효능과 안전성 시험)과 사용성적 조사 자료 제출을 조건으로, 2상 임상자료를 우선 심사해 허가를 내주는 제도다. 식약처는 이를 위해 이달 중 관련 법(획기적 의약품 등의 개발지원 및 허가촉진을 위한 특별법)을 입법예고할 계획이다.
채지선 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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