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웅장한 성벽에 둘러싸인 중세의 타임캡슐

입력
2016.05.18 17:00
0 0
두브로브니크 성벽에서 내려다본 올드시티. 코발트빛 아드리아해와 오렌지빛 지붕들이 황홀한 조화를 이룬다. 두브로브니크(크로아티아)=이성원기자
두브로브니크 성벽에서 내려다본 올드시티. 코발트빛 아드리아해와 오렌지빛 지붕들이 황홀한 조화를 이룬다. 두브로브니크(크로아티아)=이성원기자

성벽에 둘러싸인 두브로브니크 올드시티는 그리 크지 않다. 성벽의 둘레는 1,940m에 불과하다. 하지만 성벽 안에 간직된 유산과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시간을 넉넉히 가지고 각 골목을 헤집고 다니다 보면 길과 건물이 품은 재미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두브로브니크를 가득 채운 말간 기운처럼 그 이야기들엔 정신을 맑게 하는 향기가 있다.

두브로브니크 골목길.
두브로브니크 골목길.

두브로브니크를 감상하는 최고의 방법은 성벽 위를 걷는 것이다. 성 안을 굽어보고 성 밖 아드리아해의 평화로운 풍경을 마주하는 걸음이다. 성벽의 두꺼움은 도시가 맞서야 했던 외적에 대한 두려움과 그들이 꼭 지켜야만 했던 소중한 가치를 보여준다.

십자군 전쟁 이후 동서 교역의 중심에 서게 된 두브로브니크는 12~13세기 유럽의 국가들 중 이슬람 문명국과 교역이 허락된 유일한 도시국가였다. 이 도시가 특별한 건 전쟁 없이 모든 걸 평화로 이뤄냈다는 것. 돈이나 화려한 외교술로 땅과 섬을 얻어 영토를 넓혔다. 15세기 오스만제국이 발칸반도에 쳐들어올 때는 과감히 머리를 숙였다. 오스만의 보호를 받고 공물을 바치는 조건으로 자신들의 자율권과 교역망을 유지했다. 영리한 시민들은 오스만제국 내에서의 자유무역까지 보장받는 특혜를 얻어냈다. 군대가 아닌 외교의 힘으로 도시를 지키고 실리를 챙겨온 것이다.

맑은 대리석길 따라 펼쳐지는 이야기 보따리

두브로브니크 중심 가로인 스트라둔.
두브로브니크 중심 가로인 스트라둔.
프란치스코회 수도원.
프란치스코회 수도원.

성벽을 한 바퀴 돌고 내려오면 본격적인 거리 투어다. 올드시티의 중심 가로는 스트라둔. 넓고 아름다운 대리석 거리다. 바닥을 디디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맑아지는 길이다. 이 길을 중심으로 도시는 남북으로 양분된다. 길의 양 끝에 성의 동문과 서문이 이어진다.

성의 관문인 필레 게이트로 들어서면 바로 오노프리오 분수대를 만난다. 16개 면으로 둘러싸인 분수대엔 각 면마다 세밀한 얼굴조각이 장식돼 있다. 아쉽게도 공사 중이라 가림막에 가려져 있었다.

분수대 맞은 편 거대한 건물은 프란시스코회 수도원. 건물 안에는 아드리아해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회랑이 있다. 또 수도원의 한 쪽엔 1317년 문을 연 약국이 있다. 지금도 운영되는 약국으로 세계에서 3번째로 오래된 곳. 지금도 옛 제조 방식대로 약제를 만들어 판다. 이 약국은 한국인 관광객이 유독 많이 몰리는 곳으로 장미수분크림 등을 많이 사간다고 한다.

롤랑 기둥과 블라이세 성당.
롤랑 기둥과 블라이세 성당.
종탑의 '두브로브니크 그린맨'.
종탑의 '두브로브니크 그린맨'.
렉터궁전.
렉터궁전.

동문 앞 루자광장에는 도시의 수호성인을 모신 블라이세 성당이 있다. 성당의 가장 높은 곳에 성 블라이세가 들고 있는 건 지진이 나기 전 두브로브니크의 도시 모형이다.

이 성당 앞에는 주요 행사 때 깃발을 내거는 롤랑의 기둥이 있다. 전설적인 기사 롤랑이 조각돼 있다. 아드리아해 남단에 왜 서유럽의 기사 상이 있는지 의아해할 수도 있다. 두브로브니크는 15세기 헝가리와 신성로마제국을 다스렸던 지기스문트 황제의 보호를 받았었다. 롤랑의 기둥은 거대 라이벌인 베네치아로부터 이 도시를 지켜주는 지기스문트에 대한 충성심의 상징이다. 이 기사의 팔뚝은 당시 두브로브니크 길이 단위인 1엘(51.2㎝)과 동일한 길이로 공화국의 공식 척도였다.

광장의 스폰자궁전은 1667년 대지진 때 살아남은 몇 안 되는 건물 중 하나다. 예전엔 세관과 보세창고로도 이용됐다고. 이 건물 창고의 아치엔 이런 글이 새겨 있다고 한다. ‘우리의 법은 속이거나 속임을 당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우리가 물건을 계량할 때는 신께서도 함께 하신다.’ 교역의 도시답게 계량의 엄중함을 담고 있다.

그 옆 종탑의 꼭대기엔 2명의 ‘두브로브니크 그린맨’이 있다. 종을 치는 사람 모형이다. 매 시각 정시와 30분에 종을 울린다. 렉터궁전은 두브로브니크 공화국을 다스리던 렉터가 거주하는 공간. 왕정이 아닌 도시는 상원과 하원 원로원 체제로 통치됐다. 50세가 넘은 상원 중에서 선출된 렉터가 일정 기간 도시를 다스렸다고.

두브로브니크 대성당(성모승천 대성당)
두브로브니크 대성당(성모승천 대성당)
바로크계단.
바로크계단.

렉터궁전 앞 대성당은 성모승천대성당으로 불린다. 성당 안에 있는 티티아노가 그린 성모승천 그림 때문이다. 이 건물은 지진 이후 새로 지은 것. 지진 전에 있던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은 영국의 사자왕 리처드왕이 지어준 것. 3차 십자군 전쟁에 참여했던 리처드왕은 영국으로 돌아가던 길 아드리아해에서 폭풍을 만나 조난당했는데 두브로브니크 앞에 있는 로크룸 섬에 좌초해 목숨을 건졌다고. 당초 섬에 성당을 세우려던 것을 이곳 시민들의 꾐에 빠져 도시 안에 짓게 된 것이란다.

대성당 뒤편의 광장을 지나 남쪽 언덕을 오르는 길에 로마의 스페인 계단을 빼닮은 바로크 계단을 지난다. 시 관광청 안내책자에서도 상세히 소개된 운치 있는 계단이다.

Buza… 세상에서 가장 낭만적인 구멍

두브로브니크 부자카페.
두브로브니크 부자카페.
두브로브니크 검역소 라차레티.
두브로브니크 검역소 라차레티.

계단을 올라 성벽을 따라가다 보면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누나’에 나왔던 부자(Buza)카페를 찾아 들어갈 수 있다. ‘buza’는 구멍이란 뜻. 성벽의 구멍 같은 좁은 문 밖 깎아지른 비탈에 카페가 자리한다. 평화로운 아드리아해의 풍경을 만끽할 수 있는 공간이다.

내항의 부두 너머엔 유독 창문이 없는 꽉 막힌 듯한 건물들이 일렬로 이어진 것이 보인다. 이 도시가 운영했던 공식 검역기관 라차레티다. 당시 유럽은 흑사병의 창궐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공화국은 교역을 통한 얻은 페르시아의학에서 전염병을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국외에서 들어오는 사람을 일정 기간 격리 감시할 필요가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두브로브니크는 도시의 성벽 밖에 환자들과 외부인들을 위한 격리 시설을 따로 마련해 환자를 돌보기 시작했다. 또 30일간의 엄격한 격리 조치를 골자로 한 ‘트렌티노’라는 법령도 만들었다. 흑사병 유행 지역을 방문한 시민이나 방문자들은 도시 밖에서 30일 간의 격리 기간을 가져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두브로브니크의 현명함을 증명하는 시설이다.

두브로브니크 로브레나츠 요새.
두브로브니크 로브레나츠 요새.
로브레나츠 요새에서 바라본 올드시티/2016-05-17(한국일보)
로브레나츠 요새에서 바라본 올드시티/2016-05-17(한국일보)

로브레나츠 요새는 성벽 바로 옆에 따로 떨어져 있다. 성 밖에서 성을 지키는 요새다. ‘두브로브니크의 지브롤터’로 불리는 절묘한 위치에 서서 육지와 바다로 침입하는 적들을 막는다. 이 요새는 도시를 지키기도 하지만 도시를 조망하는 최고의 전망대다. 요새의 입구엔 ‘세상의 모든 금을 준다 해도 자유를 팔 수는 없다’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세상의 돈을 끌어 모았던 도시는 그 이상으로 자유 의지가 강했다.

두브로브니크=이성원기자 sungwon@hankookilbo.com

두브로브니크를 떠나는 날 비가 내렸다. 차창에 맺힌 물방울에 아드리아해의 진주로 불리는 풍경이 번진다.
두브로브니크를 떠나는 날 비가 내렸다. 차창에 맺힌 물방울에 아드리아해의 진주로 불리는 풍경이 번진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