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본 M&A와 비슷한 수법 대학 인수
학교 돈 60억 횡령… 잔금 치르고 투기
기숙사 등 건설업자 하도급 ‘가공거래’
45억 비자금 만들어… 수표만 2000장
중소 캐피탈을 운영하던 한모(67)씨는 지난 2010년 12월 경기 평택 국제대학교를 인수하기로 결심했다. 초등학교 동창인 장모(67) 전 백석대 총장으로부터 ‘학교가 돈 벌이가 된다’는 식의 솔깃한 말을 듣고서다. 한씨는 장씨의 비자금 창구였던 D건설 대표 김모(55)씨와도 자주 어울렸던 터였다.
매입 과정은 ‘기업사냥꾼’이 무자본 인수합병(M&A)을 통해 회사를 통째로 먹는 수법과 비슷했다. 자금을 빌려 대금 일부를 치르고 회사를 인수한 뒤 공금을 빼돌려 잔금을 변제하는 식이었던 것이다.
횡령 창구는 역시 건설공사였다. 그는 매매대금 300억여 원 가운데 캐피탈에서 몰래 끌어온 27억 원을 포함, 220억여 원만 내고 이듬해 2월 이사장에 오른 뒤 굵직한 학교 공사를 D건설에 몰아주기 시작했다. D건설이 2011년 6월부터 2014년 8월까지 3년 여간 국제대에서 수주한 공사만 기숙사, 복합관 등 400억 원 규모다.
입찰 들러리 등을 내세워 공사를 따낸 D건설은 한씨와 미리 약속한대로 공사비 10% 가량의 ‘리베이트’를 건네기 위해 하도급 업체 10여 곳과 ‘가공거래’를 했다. 존재하지 않는 하도급 공사를 발주한 것처럼 꾸며 45억여 원의 비자금을 만든 뒤 한씨에게 전달한 것이다.
은밀한 거래는 추적이 어렵도록 주로 50만, 100만, 1,000만 원권 수표 2,000여장과 현금을 건네는 수법을 썼다.
한씨는 되돌려 받은 돈으로 학교 인수 당시 지급하지 못한 잔금(30억 원)을 갚거나 부동산(15억 원)에 투기했다. 밀린 세금을 내고 교육용 목적이 아니어서 교육부가 매각하라고 한 79억 원 상당의 학교 소유 미술관도 이즈음 자신의 명의로 돌려놨다.
이 과정에서 그는 학생들이 낸 등록금 15억 원을 별도로 빼내 마치 자신의 돈으로 미술관 매매대금을 치른 것처럼 꾸민 뒤 되갚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범행은 검찰의 ‘칼날’을 비켜가지 못했다. 제보를 받은 검찰은 지난해 10월 D건설 등을 압수 수색했다. D건설 대표 김씨가 작성한‘비밀장부’ 등이 드러났고 올 2월부터 2개월간 수표 전수조사에 나서 추악한 실체를 밝혀냈다.
수원지검 특수부(부장 송경호)는 2011~2014년 학교 돈 60억 원을 빼돌린 혐의(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국제대 전 이사장 한씨를 구속 기소했다고 18일 밝혔다. 한씨의 범행을 돕고 회사자금 66억 원을 개인채무 변제 등에 쓴 혐의로 D건설 대표 김씨도 함께 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김씨가 충청권 J대학 대표자와도 비슷한 수법으로 범행한 정황을 잡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한씨에게 ‘검은 비법’을 알려준 것으로 전해진 백석대 장 전 총장은 김씨와 손잡고 교비 59억9,000만여 원을 빼돌린 혐의가 드러나 지난해 12월 징역 3년 형이 확정됐다. 친구 따라 쇠고랑을 차게 된 한씨는 수사 막바지인 지난달 이사장 직에서 물러났지만, 일부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고 검찰은 전했다.
검찰 관계자는 “사학비리가 기업비리 못지 않게 고도화, 지능화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혀를 내둘렀다.
유명식기자 gija@hankookib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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