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심원 ‘한국인 선원 가이드북’, 외국인-자국민 편견 담아
“구타에 대한 평가를 한국인처럼 가볍게 하는 민족은 드물어”
작년 교육부 ‘성교육 표준안’도 논란 끝에 수정 재배포
해양수산부 중앙해양안전심판원(이하 해심원)이 발간한 ‘외국인 선원 이해를 위한 한국인 선원 가이드북’ 어선편이 외국인 선원에 대한 편견을 조장한다는 논란(관련기사 중국 선원은 불결하고 필리핀 선원은 인내 부족?)이 일자 해심원이 18일 해당 가이드라인을 전량 폐기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17일 발간 직후 택배로 배송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현장에 배포되기 전에 전량 수거가 가능했다고 합니다. 홈페이지에 올라간 파일도 삭제했습니다. 해심원 관계자는 “검수 등 필요한 절차를 모두 거친 자료였지만 미흡한 부분이 있어 폐기를 결정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외국인 선원을 이해해 갈등을 최소화하자는 취지로 만든 자료에서 인도네시아, 베트남, 중국, 필리핀 선원들을 더러 “인내가 부족한 편이다” “위생상태가 불결하다” “능동적으로 바쁘고 급한 일부터 처리하는 센스가 부족하다”고 설명해 놓고, 하루 만에 ‘미흡한 부분’을 깨달았다는 건 넌센스가 아닐 수 없습니다.
폐기 처분이 돼서 다행이지만, 이 가이드북은 다른 문제도 담고 있었습니다. 외국인 선원뿐만 아니라 자국민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없는 편견을 보여 준 겁니다. 가이드라인의 ‘지휘통솔 유의사항’ 중 ‘폭행과 폭언의 금지’ 항목에서는 “구타에 대한 평가를 한국인처럼 가볍게 하는 민족은 매우 드물다”라며 “외국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어린이들의 육박전 싸움,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우리 속설, 툭툭 치며 친밀감을 표시하는 한국인의 습성, 이런 것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한국인만의 것으로 외국인에게는 전혀 인정되지 않음을 명심해야 한다”는 내용이 등장합니다. 정부가 생각하는 국민의 의식수준이 이것밖에 안 되는 건지 참담한 일입니다.
정부가 만든 가이드라인이나 지침서 등이 인권 문제로 비화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작년 3월 교육부가 체계적인 성교육을 하겠다며 도입한 ‘학교 성교육 표준안’은 많은 논란 속에 6개월간 수정과정을 거쳐 다시 배포됐습니다. 성교육 표준안은 초등학교 1~2학년, 3~4학년, 5~6학년, 중학교, 고등학교 등으로 단계별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당시 교육부는 초등학교 3~4학년 지도서 초안 중 ‘성별에 따른 가족 구성원의 역할과 중요성’에서 아빠의 역할은 못 박기, 전구 갈기, 가구 옮기기 그리고 엄마의 역할은 음식 만들기, 옷장 정리하기, 빨래 개기 등으로 구분했습니다. 이후 개정안에서는 “성별에 따라 성 역할이 정해지지 않았다”라며 “각 가정의 상황에 따라 어떤 가족 구성원이 어떤 일을 잘 할 수 있을 지에 따라 (역할이) 다르다”라며 성별 역할구분을 없앴습니다.
중학교 지도서에서도 초안에 ‘성과 관련된 거절 의사 표현을 분명히 밝히지 않았을 때 성폭력, 임신, 성병 등 성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라고 명시해 뭇매를 맞고 나서야 개정안에서 해당 서술을 삭제했습니다. 고등학교 지도서에서는 ‘인간의 건강은 선천적으로 자궁에서 결정된다’ ‘임신 전부터 자궁 관리가 중요하다’라며 출산을 여성의 책임으로만 규정했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과거에 이처럼 잘못 만든 정부의 가이드북이 뭇매를 맞았던 사례가 있었음에도, 이번에 해수부에서 문제의 소지가 큰 가이드북을 신중한 검토 없이 발간한 것은 참 아쉬운 일입니다. 타 부처의 실수를 반면교사로 삼지 못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 무신경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지요. 앞으로 이런 가이드북을 낼 때, 특히나 외국인이나 소수자 등을 다루는 문제에서는 정부가 좀 더 세심한 배려를 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세종=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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