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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부커상 ‘K픽션’ 문을 열었다… 번역자가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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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부커상 ‘K픽션’ 문을 열었다… 번역자가 관건

입력
2016.05.1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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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부커상을 공동 수상한 한강(오른쪽) 작가와 번역자 데버러 스미스가 16일 런던에서 수상 직후 상패를 들고 나란히 섰다. 런던=연합뉴스
맨부커상을 공동 수상한 한강(오른쪽) 작가와 번역자 데버러 스미스가 16일 런던에서 수상 직후 상패를 들고 나란히 섰다. 런던=연합뉴스

한강 작가의 영국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 낭보로 ‘문학 한류’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이번 수상은 한국문학의 해외 진출에서 번역의 중요성을 새삼 절감하는 사건이기도 했다.

드라마와 가요 등 대중문화의 세계적 인기에 힘입어 문화예술 분야의 해외 진출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지만 문학은 그 중 뒤처진 축에 속했다. 2011년 신경숙 ‘엄마를 부탁해’가 미국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2014년 황선미 ‘마당을 나온 암탉’이 영국 대형서점에서 한국작가 최초로 판매 1위를 기록했지만, 일본의 무라카미 하루키, 중국의 모옌 등이 세계 유수의 문학상을 휩쓸며 자국의 문화대사 역할을 한 것을 감안하면 한국문학은 미지의 영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맨부커상 수상으로 그런 사정에 변화가 올 가능성이 없지 않다. 맨부커상 심사위원장인 인디펜던트 문학담당기자 보이드 톤킨은 16일 ‘채식주의자(The Vegetarian)’를 수상작으로 발표하며 “한국은 매우 강력한 소설 문화를 가지고 있다. 훌륭한 작가들이 많고 문학계도 활발하다”고 소개했다. 또 “만약 우리가 이 나라(한국)를 알려주는 작품들을 좀더 많이 봤더라면 매우 좋은 결과가 있었을 것”이라며 한국문학이 영국에 더 많이 소개되기를 기대했다.

수상자리에 어울리는 덕담처럼 들리지만 실제로 최근 한국문학에 대한 해외의 반응은 이전 같지 않다. 한국문학번역원에 따르면 외국 출판사가 한국문학을 출간하겠다고 번역 지원한 건수는 2014년 13건에서 지난해 58건으로 늘었다. 58건 중 42건을 번역 지원했고 이 중 20건이 출간 계약으로 이어졌다. 지금까지는 번역원이나 대산문화재단에서 작품을 번역해 외국 출판사에 내달라고 요청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상황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번역원 관계자는 “해외 편집자들 중 한국 문학에 흥미를 가진 이들이 늘면서 일어난 변화”라고 말했다.

최근 외국에서 한국 문학이 거둔 크고 작은 성취는 이런 토양 변화를 배경으로 한다. ‘철수’의 작가 배수아는 지난해 국제펜클럽이 주관하는 ‘PEN 번역상’ 최종 후보에 올랐고, 정유정의 추리소설 ‘7년의 밤’은 독일 주간지 디 차이트가 선정한 ‘2015년 범죄 소설 10’에 들었다. 구병모의 청소년소설 ‘위저드 베이커리’는 멕시코에서 초판만 1만 부를 찍는 등 좋은 반응을 얻었으며, 편혜영의 장편소설 ‘재와 빨강(ASHES AND RED)’과 ‘홀(THE HOLE)’도 최근 미국 출판사 아케이드 퍼블리싱과 판권 계약을 마쳤다. 편혜영 작가의 해외 판권을 관리하는 KL매니지먼트는 “현지 출판사가 소설의 개성 있는 문체에 큰 매력을 느껴 만장일치로 출간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미 상당수의 작품이 해외로 번역 소개된 이승우, 황석영, 이문열, 은희경, 조정래, 공지영, 김영하, 천명관 등도 외신으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해외 출판시장 변화도 한국문학 진출에 돛을 달아준다. 영국 도서데이터 분석업체 닐슨북에 따르면 영국에서 번역 소설의 판매 부수는 2001년 130만부에서 2015년 250만부로 무려 96%나 늘었으며 판매액도 890만파운드(152억원)에서 1,860만파운드(317억원)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영국에서 한국문학도서 판매부수 역시 2001년 88부에서 지난해 1만191부로 크게 늘었다. 전체 도서 판매부수가 5,160만부에서 4,970만부로 감소한 것과 대조적이다. 맨부커상선정위원회가 올해부터 비영연방 작가에게 주는 인터내셔널 부문 상을 격년에서 매년 시상으로 바꾸고 번역자를 수상자에 포함시킨 것도 이런 흐름을 반영한 것이다.

모처럼 호기를 맞은 문학한류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기 위해 너나없이 입을 모아 강조하는 것은 번역의 중요성이다. ‘채식주의자’는 젊은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가 마음에 드는 작품을 골라 번역해 현지 출판사에 샘플을 제출한 뒤 출간을 성사시켰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도 재미동포 번역자의 매끄러운 문장이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와 관련 조재룡 문학평론가는 번역원의 공역(한국 번역자와 외국인 공동 번역) 작업으로는 성공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그는 “한국인이 서툴게 번역한 외국어를 외국인이 고쳐줄 거라 믿지만 실제로 자신이 이해 안가는 건 다 지우고 편한 대로 바꿔 버리기 일쑤”라며 “빨리, 많이 번역하려는 성과주의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말했다.

조씨는 이번 맨부커상 수상을 “번역의 승리”라고 단언했다. 그는 “스미스가 한강 고유의 문체를 탁월하게 치환했고 여기에서 승부가 났다. 한강 텍스트에서 보이는 얼마간의 진부함도 번역을 거치며 살아났다”며 “번역자가 영어를 모국어로 한다는 점과 문학을 전공했다는 점에서 ‘채식주의자’ 번역은 가장 이상적인 사례”라고 칭찬했다. 또 “번역은 언어코드를 조합하는 게 아니라 글을 쓰는 일”이라며 “문학 한류의 희망은 이걸 알고 있는 외국의 번역자를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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