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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판 “수사 축소 안 해” VS 권은희 “영장 보류 종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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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판 “수사 축소 안 해” VS 권은희 “영장 보류 종용”

입력
2016.05.1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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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판-권은희 끝나지 않은 악연

권은희 모해위증 혐의로 피고인석

삭제된 메모 영사기로 보여주기도

김용판은 증인석서 “한이 맺힌다”

“당시 검사가 쓴 건 전부 소설”

권은희 국민의당 의원이 2014년 2월 서울 송파경찰서에서 수사를 방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은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1심 무죄 선고에 대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시스
권은희 국민의당 의원이 2014년 2월 서울 송파경찰서에서 수사를 방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은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1심 무죄 선고에 대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시스

국가정보원의 2012년 대선개입 댓글 사건 수사를 축소했다는 의혹을 놓고 피고인과 증인으로 법정에 섰던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과 권은희 국민의당 의원이 17일 자리를 바꿔 다시 마주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부장 최창영) 심리로 열린 권 의원의 모해위증 혐의에 대한 공판에서 과거 증인이었던 권 의원은 피고인석에, 피고인이던 김 전 청장은 증인석에 앉았다. 권 의원은 김 전 청장의 유죄를 주장하는 거짓 증언을 한 혐의로 지난해 8월 불구속 기소됐다.

2014~2015년 김 전 청장의 유죄를 추궁했던 검찰은 이날은 철저히 김 전 청장의 입장에서 그를 신문했다. 검사는 증인 선서를 마친 김 전 청장에게 “서류로만 보다가 직접 뵙는다”는 인사로 신문을 시작했다. 검사는 김 전 청장이 대선 개입 사건 수사과정에서 권 당시 수서경찰서 수사과장과 통화한 내용을 물으며 “편하게 말씀하시라. 당시 전화통화 내용을 하도 많은 곳에서 증언을 해서 사무칠 텐데”라고 덧붙였다. 김 전 청장은 “그렇다. 한이 맺힌다”며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두 사람은 법정에서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김 전 청장은 “기본적으로 영장이 보류됐다는 전제 하에 (권 의원과) 통화했다. 고시출신이라 똑똑하다고 격려하며 영장이 보류됐지만 끝난 게 아니고 당시 형사소송법이 개정돼 경찰이 수사할 수 있는 권한(수사개시권)이 있으니 앞으로 수사권 조정도 강하게 해나가면 좋지 않겠냐고 말했다”며 수사 축소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이에 대해 권 의원은 “4분 가량의 통화에서 ‘이광석 수서서장은 뭘 잘 모르니 (영장을 신청하지 말도록) 잘 설득해라. 검찰이 영장을 기각하면 어떡하느냐’는 말도 하지 않았느냐”고 반박했다. 그러자 김 전 청장은 “청장이 서장을 직접 설득하면 될 일이지 뭐하러 수사과장을 시켜 서장을 설득하겠느냐. 말이 안 된다”고 잘랐다. 권 의원은 당시 김 전 청장이 전화를 걸어 국정원 직원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보류하라고 종용하고 축소·은폐 수사를 지시했다고 폭로하고 법정에서도 같은 증언을 했다.

권 의원은 반대신문에서 사건 수사 당시 삭제됐던 메모의 복원 파일을 직접 영사기를 통해 보여주기도 했다. 그는 아이디 등이 적힌 메모를 가리키며 “인터넷 선거운동을 할 때 아이디와 닉네임이 다수 발견되면 혐의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살펴보는 게 일반적인데, 어째서 이 사건에 대해서는 게시글을 찾는 방식만 수사기법으로 생각하느냐”고 따졌다. 김 전 청장은 “전례가 없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김 전 청장은 검찰을 비판하는 취지의 발언을 해 법정에 침묵이 흐르기도 했다. 대선을 불과 사흘 앞두고 ‘대선 후보에 대한 지지ㆍ비방 댓글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한 것에 대해 서울경찰청이 사전에 시기를 정해놓은 것이냐고 검사가 묻자 김 전 청장은 “검사님 들으면 섭섭하겠지만, 당시 수사검사가 쓴 건 다 소설이다. 판결문에 기재된 내용이 사실이다”고 일침을 놨다. 그는 “검찰이 날 기소해놓고 사과 한 마디 없이 이렇게 증인으로 불렀다”며 “지난 3년간 재판 받으며 상처를 많이 입었다. 다시는 법정에 오기 싫다”고도 했다.

검사 입장에서도 ‘불편한 질문’을 했다. 국정원 직원의 혐의사실을 인정할 만한 증거를 발견하고도 디지털증거분석 보고서에 일부러 빠뜨렸느냐는 질문을 하면서 검사는 “검찰에는 불편한 질문이지만 (보고서에) 아이디와 닉네임이 빠졌다는 것이 (김 전 청장) 기소내용에 포함됐는데 (수사 당시에는) 몰랐다는 말이냐”고 물었다. 김 전 청장은 “몰랐다. 기소된 뒤에 알았다”고 답했다. 앞서 검찰이 김 전 청장을 기소할 때 “인터넷 게시글을 숨겼다”고 주장한 것과는 전혀 다른 모양새다.

김 전 청장은 2012년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수사에 부당하게 개입해 특정 후보의 당선에 영향을 미친 혐의로 2013년 6월 불구속 기소됐다. 1·2·3심 재판부는 모두 권 의원의 주장을 오해나 허위라고 판단해 김 전 청장에 무죄를 선고했다. 이후 두 사람은 정계 진출을 꾀해 권 의원은 4월 20대 총선에서 재선(광주 광산을)에 성공했으나 김 전 청장은 새누리당 경선에서 고배를 마셨다.

이날 권 의원은 김 전 청장을 ‘청장님’이라고 부르면서 ‘했잖아요’ 등 해요체를 썼다. 김 전 청장은 권 의원을 호칭하지 않고 높임말을 썼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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