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자가 발표된 16일 밤. 영국 런던 빅토리아&앨버트 박물관에서 한강 작가가 잔잔한 목소리로 수상소감을 발표하는 동안 작가 옆에 앉아 있던 젊은 여성이 참던 울음을 터뜨렸다. 수상작 ‘채식주의자(The Vegetarian)’를 번역한 영국인 데버러 스미스(28)다.
데버러 스미스는 이번 ‘채식주의자’ 맨부커상 수상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한국 문학을 깊이 이해하고 작품에 가장 적합한 옷을 찾아준 것이야말로, 1만㎞도 더 떨어진 한국의 연작소설집이 영국의 권위 있는 문학상을 타게 된 결정적인 공이기 때문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스미스는 현재 런던대 동양아프리카학(SOAS) 한국문학 박사과정 수료를 앞두고 있다. 문학에 열정이 컸던 그는 현대 번역문학을 즐겨 읽음에도 불구하고 외국어를 전혀 모르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외국어를 배워 문학 전문 번역자가 되겠다고 결심한 그가 한국어를 택한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이나 한국문학을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한국문학번역원의 ‘T매거진’에서 실린 기고에서 스미스는 “내가 책을 읽어본 적이 없는 나라 중에서도 한국이 상대적으로 부유한 선진국인 것으로 보아” 문학적 유산이 풍부할 것으로 짐작하고 한국어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런던대에서 SOAS 한국학 석사과정을 시작한 그는 박사과정 2년째에야 한국 소설을 읽을 수 있었다.
스미스가 한국문학 전문번역가로 자리를 잡은 것은 2014년 런던 도서전에서다. 그 해 도서전 주빈국은 한국이어서 런던 도서전 조직위 관계자는 영국에서 활동하는 한국문학 번역자 찾기에 바빴다. 그런데 마침 그 얼마 전에 스미스가 ‘채식주의자’ 영역 샘플을 현지 포트로벨로 출판사에 보내 출간이 성사돼 이름이 알려진 것이다. 스미스는 이를 “상상 이상의 행운”이라고 불렀다.
“번역도 창작이며 예술적인 과정”이라고 믿는 스미스의 번역관은 ‘채식주의자’ 번역 후기에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연작 소설 1, 2, 3부의 정서를 각각 “단정적인 어조와 무심함, 연민으로 희석된 욕망, 표백된 피로감”으로 규명한 뒤 그에 맞는 문체와 어조, 스타일과 음색을 조합하기 위해 노력했다.
해석의 다양성을 최대한 존중하는 스미스의 번역은 한국 작가들 중에서도 시적이고 관념적인 문체를 구사하는 작가의 작품과 만났을 때 최고의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 그가 한강과 더불어 관심을 갖고 있는 작가는 배수아다. 스미스는 “배수아의 작품은 매우 실험적이고 난해한 소설”이라며 “그에 맞는 가장 이상적인 출판사에 출간을 권유하고 설득시키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이런 과정에서 출판사 사람들이 작가의 팬이 되게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스미스는 올해 박사과정을 졸업하고 전업 번역가이자 출판인으로 나선다. 이미 비영리 출판사 틸티드 악시스를 설립해 이끌고 있는 그는 한국과 더불어 풍부한 문학자원을 가진 다른 나라의 숨겨진 작품들을 발굴할 계획이다. 최근에는 이인성의 ‘낯선 시간 속으로’와 박상륭의 ‘죽음의 한 연구’의 번역 샘플을 만들어 미국 출판사에 보내려고 준비 중이다.
스미스는 틸티드 악시스에서 1년에 4권의 책을 내되 “그 중 한두 권은 한국 소설로 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틸티드 악시스의 좌우명을 ‘더 적게 출판하면, 더 좋게 출판할 수 있다’라고 소개하는 그는 “나의 목적은 문학을 마치 무엇과도 상관없이 바꿔칠 수 있는 물품처럼 다루는 ‘상업 검열’에 반대하여, 번역을 예술행위로 승화시키고 세계적인 독자들 사이에 깊은 생각의 이야기꽃을 피우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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