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 못 보여 준 서울권
KBS교향악단 객원지휘자 레비
스케일만 강조해 앙상블 무너져
최수열이 주축이 된 서울시향도
아직 균형감 부족해 밀도 떨어져
돋보인 과천ㆍ부천시향
기대주 불과했던 과천시향 서진
짧은 시간에 앙상블 음악미 성취
복제 추구하던 부천시향 박영민
허울 벗고 자신의 음악세계 표현
해마다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교향악축제는 올해 28회째로 한국오케스트라 문화에 큰 역할을 했다. 그 동안 지방교향악단들은 발전이나 미래에 대한 비전도 없이 지역의 몇몇 지휘자들에 의해 명맥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서울서 열리는 교향악축제 참가를 통해 비판도 받고 다른 도시나 서울의 각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듣고 상대비교나 또는 절대평가를 통해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도약을 위한 발판과 발전의 길을 찾았다. 그 2016교향악축제가 지난달 1일부터 22일까지 있었다.
올해는 KBS를 시작으로 서울시향에 이르기까지 19개의 오케스트라가 기량과 역량을 뽐내며 그 동안 갈고 닦은 음악미를 선 보였다. 지난 28년의 역사에서 보면 서울권과 지방의 앙상블음악의 실력 차이는 쉽게 좁혀지지 않았으며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서울에는 최고의 오케스트라로 칭송 받는 KBS교향악단과 서울시향, 코리안 심포니가 전통적으로 권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올해 이들 오케스트라는 그 동안의 권위를 보여주지 못했다.
KBS교향악단의 경우 요엘 레비가 문제였다. 오케스트라에는 주인인 상임 지휘자가 있고 초청 손님인 객원지휘자 제도가 있다. 상임은 자신에게 부여된 오케스트라 발전이나 음악적 성취를 목적으로 하지만 객원은 자신에게 주어진 몫의 지휘만 하고 떠난다. 때문에 필요한 부분만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데 결과로 보면 요엘 레비의 음악이 그랬다. 그의 음악은 스케일이나 다이내믹이 강조되어 보이기 때문에 외형으로는 무난했다. 그러나 세부적으로 보면 다이내믹이 강조된 부분과 그러지 않은 부분에서 앙상블의 연습 결과를 나타내는 질감이 차이가 났다. 특히 이들은 스스로가 앙상블 음악을 구축할 능력이 있는데도 무너지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이런 현상은 지휘자의 무리한 음악적 요구로 인해 단원들이 수동적일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레비가 이들 KBS교향악단의 전통을 무시한 결과로 봐야 할 것이다.
서울시향의 경우도 지휘자의 문제였다. 지휘자 최수열은 현재의 지휘자가 아니라 미래가 기대되는 지휘자다. 현재 서울시향의 메인 콘서트를 맡기는 무리가 있다. 정명훈이 있을 때는 그의 카리스마에 의해 앙상블 질감이 유지되었다. 최수열이 주축이 된 이번 연주에서는 그 앙상블이 무너졌다. 이 경우를 극복하려면 아주 좋은 귀를 가졌거나 많은 경험으로 단원들의 매너리즘을 극복하는 리더여야 하는데 아직은 부족했다. 이 때문에 오케스트라는 긴장된 앙상블 균형감을 보여 주지 못했고 당연히 음악적 밀도는 떨어졌다.
코리안 심포니의 경우는 임헌정이 맡으며 아직 단원들과 음악적 친화력을 자기화하지 못하고 있는 데서 문제가 비롯됐다. 임헌정은 연습 시간을 통해 앙상블 질감의 밀도를 높여 음악미를 성취하는 형이다. 임헌정과 오케스트라가 하나가 되었다기보다는 음악적 헤게모니의 질서를 찾아가는 중으로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도 눈에 띄고 미래는 당연히 기대되는 젊은 지휘자도 만날 수 있었던 축제였다. 과천시향의 서진과 부천시향의 박영민이 그들이다. 과천시향의 서진은 작년까지만 해도 그냥 막연히 기대되는 지휘자중 한 명일뿐이었다. 그런 그가 올해 갑자기 당당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좋은 연주를 했다는 평가를 넘어서는 정도로 오케스트라 음악을 성취한 모습을 보여 준 것이다. 오랜 세월 오케스트라를 지휘했어도 앙상블의 음악미를 모르는 지휘자들도 적지 않다. 그런데 서진은 그 한계를 짧은 시간에 극복해내고 있다.
부천의 박영민도 주시할 대상이다. 그 동안 박영민은 일정한 모델의 복사만을 추구해서 언제 자신의 음악세계를 가질까 우려도 되었다. 올해 그 허울을 벗고 드디어 자신의 세계를 그려가기 시작했다. 어떤 점에서 젊은 지휘자가 성장해가는 정형을 보는 듯하다. 앞으로가 기대되는 오케스트라는 강릉과 전주다. 강릉시향의 유석원은 앙상블 음악미를 추구, 다양한 발전 모델의 한 측면을 보여주고 있어서 기대를 갖게 했다. 전주 시향의 최희준은 앙상블 구성이나 음악미의 균형감에서 기대를 갖게 했다.
오케스트라 지휘자는 최상의 앙상블이나 음악적 환경에서 성장이 보증된다. 하지만 국내 오케스트라는 지휘자에게 블랙 홀 같은 존재가 되어 있어서 이를 극복한다는 게 쉽지 않다. 그래도 희망적인 것은 젊은 지휘자들이 군산, 청주, 춘천, 원주 등에 포진해 있는 점이다.
솔리스트는 매번 기대와 실망의 대상이다. 전주교향악단과의 협연에서 과거와 달리 진지한 자세를 보여준 첼로의 송영훈과 서울시향과 함께하면서 여성적이라고 할 만큼 섬세하고 고운 톤에 뛰어난 앙상블 대응 능력을 보여준 오보에의 함경은 주목할만했다. 다만 함경의 경우 솔리스트나 앙상블 주자로 성공하려면 상대와 조화하거나 공간 지배에서 절대적인 역할을 하는 배음이 풍성한 톤을 터득하는 것이 과제라고 할 수 있다.
교향악 축제는 오케스트라 발전의 촉진제다. 28년을 맞는 이제 한 단계 도약을 꿈꿔야 한다. 국내 오케스트라가 여전히 지휘자의 음악을 빨아들여버리고 마는 환경을 이어오는 것은 서구 지휘법의 한계로도 볼 수 있다. 서구 음악사로의 역사적 여행에서 분명 해결의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문일근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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