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과 부대끼며 사는 일은 늘 분노, 의심, 아집, 피로를 일으킨다. 오대산 월정사를 지키는 주지 정념 스님은 이런 이들에게 삶의 쉼표, 즉 단기 출가를 권한다. 그는 주지 취임 첫 해인 2004년부터 1개월 과정의 출가학교를 개설해 3,000여명의 수료자를 냈다.
정념 스님이 최근 이 여정을 담은 ‘출가학교’(모과나무)를 냈다. 참선 수행을 중시하는 그는 조계종 중앙종회의원, 동국대 이사 등을 지냈으며 일제강점기 반출된 ‘조선왕조실록’ ‘의궤’ 반환 환수위를 구성해 이를 되찾아 오기도 했다. 그가 출가학교 개설을 결심한 건 프랑스 보르도 근교에 있는 틱낫한 스님의 명상공동체를 방문하고부터다.
“다양한 인종, 다양한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함께 식사를 하고 함께 걷고, 함께 좌선을, 노동을, 토론을 하더군요. 그들의 움직임은 매우 부드러웠고, 얼굴에는 하나같이 미소가 가득했습니다. 대지의 속살을 만지듯 살포시 옮기는 발걸음에서 상대를 배려하는 작은 손놀림 하나에서도 저는 알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행복해 하고 있었습니다.”
대중들이 “마음이 아프고, 답답하고, 삶이 무겁고 힘들 때 찾아와 쉬고, 어제의 낡은 곳을 벗어 던질 곳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시작한 것이 출가학교다. 그는 지식과 지혜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는데도 지식만 넘쳐나고 지혜가 부족하며, ‘왜’냐고 묻지 않는 질주가 계속된다고 지적한다.
출가, 즉 집을 나선다는 행위를 통해 이 세속적 욕망을 잠시라도 멈춤으로써 자제, 절제, 놓아두기가 얼마나 큰 평온을 가져다 주는지 깨달아 볼 필요도 있다는 것이다.“감사한 마음으로 한 그릇의 밥을 받아 들고, 풀 향기 바람 소리 속을 천천히 거닐어보고, 고요한 침묵 속에서 당신의 민낯과 마주해보세요.”
책은 출가학교에서 실시하는 다양한 ‘새로운 삶을 위한 연습’들을 소개한다. 대표적인 것은 머리카락을 자르는 일, 말을 삼가는 일 등이다. 삭발하고 염의(染衣ㆍ흐린 색으로 물들인 옷)를 입는 일이 중시되는 것은 외형 때문이 아니라 “개성을 허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적잖은 번뇌가 너와는 다른 ‘나’, ‘나만의 영역’에 집착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일절 말하지 않는 것도 ‘나 이런 사람이야’라는 헛된 집착과 아집을 줄이기 위함이다.“개성을 없앤다는 것, 고정관념을 버린다는 것, 나를 내려놓는다는 것, 그건 당신에게 매우 놀라운 경험이 될 것입니다.”
정념 스님은 출가학교를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갈 때 ‘나’에 대한 집착을 조금만 버린다면 누구나 수행자처럼 살 수 있다고 강조한다. 스님의 조언은 번번이 자신에겐 너그럽지만 타인의 잘못은 작은 것도 지적하고 싶어지는 일상의 못난 마음들을 가만히 비춘다.
“간간이 남이 실수를 하더라도 거울에 비친 당신 모습이니 얼마든지 이해하고, 용서하고, 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의 실수를 지적하고, 꾸짖고, 교정하려 애쓰지 마세요. 그러면 흥겨운 춤판이 깨져버립니다. 당신이 능숙한 춤꾼이라면 그의 서툰 몸짓에도 얼마든지 장단을 맞출 수 있을 겁니다.”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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