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30일. K팝 한류를 이끌며 탄탄 대로를 걷던 걸그룹 소녀시대에 한 차례 ‘지진’이 일어난 날이다. 2007년 데뷔 후 7년 동안 8명의 멤버와 동고동락했던 제시카의 갑작스런 탈퇴 소식이 전해져서다. 파열음은 컸다. 제시카는 “소속사로부터 소녀시대를 나가 달라는 통보를 받았다”며 퇴출을 주장했고, 소녀시대의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SM)는 “올 봄 제시카가 한 장의 앨범 활동을 끝으로 팀 활동을 중단하겠다고 알려왔다”는 상반된 입장을 내 대립각을 세웠다. 양 측의 표면적인 갈등의 원인은 제시카의 패션 관련 사업. 제시카를 제외한 소녀시대 나머지 멤버들이 모두 제시카의 그룹 활동 중단에 동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제시카는 코너로 몰렸다. 소녀시대에서 나온 제시카는 결국 1년 뒤에 SM에서도 떠났다.
제시카와 나머지 소녀시대 멤버들과 SM 사이에는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서로의 이해관계가 달라 어쩔 수 없었던 일이었던 것 같아요.” 제시카가 소녀시대를 떠난 지 약 2년 만에 처음으로 힘겹게 입을 뗐다. 지난 13일 서울 청담동 코리델엔터테인먼트 사옥에서 그를 만났다.
“SM과 소녀시대 멤버들에 서운하냐고요? 서운한 것 보다 서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해요. 언젠가는 헤어져야 할 텐데 이별의 시기가 제게 먼저 온 거죠.”
제시카는 소녀시대 멤버들과의 갈등 등에 대해서는 속내를 다 드러내지 않았다. 말을 아끼면 논란은 잠재울 수 있어도 쌓인 오해는 풀기 어렵다. 제시카의 탈퇴 과정을 지켜 본 소녀시대 일부 팬들 사이 그를 향한 시선이 곱지만은 않은 이유다. 제시카는 “오해는 결국 풀릴 것”이라며 “진심은 끝에 가서 결국 통할 거고 팬들도 알아 줄거라 믿는다”고 했다.
소녀시대를 떠난 제시카가 17일 미니 앨범 ‘위드 러브, 제이’를 내고 홀로 서기에 나섰다. “다 포기하고 그만두려다” 자신의 노래를 기다리는 팬들을 위해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고 했다. 제시카는 직접 작사·작곡한 타이틀곡 ‘플라이’에서 ‘안개 속에 나를 찾아야만 해’라고 노래한다. 지난 2년 동안 치른 성장통을 가사에 담았다. 그렇다고 슬픈 노래는 아니다. 제시카는 경쾌한 멜로디에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세상이 펼쳐 질 거야’란 가사로 후렴에서 희망을 노래한다. 타이틀곡 뿐 아니라 앨범 수록곡 들의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밝다.
“저도 ‘앞’이 잘 안 보이는 경험을 했고, 많은 분들이 힘든 일을 겪으며 사는데 제 노래로 힘을 주고 싶어 앨범을 밝게 꾸렸어요.”
1년 여 동안 홀로 앨범 준비를 한 만큼 “부담이 컸다”. 가장 든든했던 응원군은 친동생이자 걸그룹 에프엑스 멤버인 크리스탈이다. 새 앨범 티저 사진 노출 순서부터 타이틀곡 선택까지 꼼꼼히 챙겨줬단다.
미국에서 나고 자란 제시카에 걸그룹 생활이 답답했던 걸까. 그의 또 다른 신곡 ‘빅 미니 월드’를 들어보면 ‘어릴 때 만든 종이 상자에 살고 있던 인형들처럼’ ‘울고 싶은데 웃고 있는 게 내가 해야 하는 일인 것처럼’ 등의 노랫말이 나온다. 직접 쓴 노랫말은 아니지만 제시카는 노랫말에 공감을 표했다. 그는 “그룹 활동을 할 때는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려왔고 이젠 눈가리개(차안대)를 벗은 기분”이라며 “나와 보니 더 넓은 세상이 있다는 걸 느꼈고, 팀에선 조화를 위해서만 힘 썼다면 이젠 나를 좀 더 챙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고 자신의 변화를 들려줬다. 제시카에게 소녀시대는 어떤 의미일까. 그는 “지금의 저를 있게 해준 소중한 그룹이자 좋은 추억”이라고 의외로 덤덤하게 답했다.
공교롭게도 제시카는 지난 11일 솔로 앨범을 낸 소녀시대 멤버 티파니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다. SM에서 연습생 생활까지 따지면 7년 넘게 얼굴을 보며 활동했던 동료이지만, 제시카의 그룹 탈퇴가 매끄럽지 않았던 만큼 서로 불편할 수도 있다. 음원 경쟁도 해야 한다. 그는 “티파니 솔로 앨범 노래를 다 들어봤다”며 “티파니가 정말 하고 싶은 스타일(댄스 장르)의 음악을 한 것 같고, 멋지게 잘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더불어 “우리의 색깔이 너무 달라 보고 듣는 분들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말까지 보탰다.
“음악 방송 출연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제시카는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가수와 배우로 활동한다. 그는 최근 두 편의 중국 영화에 출연했다. 지난해 촬영을 끝낸 ‘애정포우’는 이달 시사회를 앞두고 있고, 미국 NBA 출신으로 중국 프로농구팀에서 활약하는 스포츠 스타 스테픈 마버리와 함께 나오는 ‘베이징의 뉴요커’는 촬영 중이다.
“‘베이징의 뉴오커’에서는 촐싹거리는 매니저로 나와요. 제가 소녀시대 활동할 때 ‘얼음공주’로 불려는데 반전을 줄 수 있어 재미있어요. 노래와 연기뿐 아니라 MC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모습 보여드릴게요.”
양승준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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