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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진영 여론만 수렴해 각본대로 결론… 靑은 그저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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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진영 여론만 수렴해 각본대로 결론… 靑은 그저 지켜봤다

입력
2016.05.1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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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朴-3당 회담 후 재검토 시작

교수 70여명, 시민단체 100여곳에

전화했지만 모두 ‘제창 반대’ 그룹

여론조사도 입맛에 맞춰 인용 의혹

靑, 검토과정 내내 보고 받았지만

보훈처에 판단 내맡겨 책임 논란

박승춘 보훈처장이 16일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역대 국가보훈처장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배우한기자 bwh3140@hankookilbo.com
박승춘 보훈처장이 16일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역대 국가보훈처장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배우한기자 bwh3140@hankookilbo.com

보훈처가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허용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과정에서 일방적으로 보수진영의 의견만 수렴한 것으로 나타났다. 청와대는 수시로 진행상황을 파악했지만, 최종 결정은 보훈처의 판단에 맡겨 사태를 키운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보훈처는 13일 박근혜 대통령이 여야 3당 원내대표와의 회동에서 “국론분열이 생기지 않는 좋은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힌 직후 박승춘 처장 주재로 간부회의를 열었다.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여부를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보훈처를 관리ㆍ감독하는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이 이때부터 관여했다. 보훈처는 16일 “청와대로부터 지침은 없었다”고 누차 밝혔다. 하지만 ‘지침’의 의미에 대해 “청와대와 의견교환 없이 추진했다는 게 아니라, 별도의 가이드라인을 하달 받지 않았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구체적인 지시는 없었지만, 지속적으로 상부와 교감을 나누면서 최종안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본격적인 여론수렴은 14일부터 시작됐다. 박 처장이 이날 오전 여의도 국회를 찾아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와 김광림 정책위의장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정 원내대표로부터 “국민분열을 막기 위해 전향적으로 검토해달라”는 주문을 받은 보훈처는 이날 오후 다시 회의를 열었다. 박 처장은 지난달 28일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이 문제는)내 손을 이미 떠났다”며 사실상 제창이 어렵다는 뜻을 전달했지만, 집권 여당의 거듭된 요청에 신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박 원내대표는 13일 박 대통령과의 회동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과 기념곡 지정을 강력히 요청한 당사자다.

하지만 이후 진행된 여론 수렴은 편향적으로 흘렀다. 보훈처는 민간 자문교수 70여명과 보수ㆍ안보단체 대표 100여명에게 전화를 돌려 이들의 입장을 듣는데 그쳤다. 이들은 주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에 반대하는 그룹이었고, 진보진영 인사들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박 처장은 야권 정치인들은 만나지도 않았다. 보훈처는 야권을 배제한 의견수렴 의혹에 대해 “야권과 진보단체들의 제창 요구는 이미 충분히 알기 때문에 3일 간의 촉박한 시간 동안 굳이 반대측 의견을 들을 필요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보훈처는 16일 제창 반대를 발표하면서 “찬반 양론이 팽팽하게 갈려 제창으로 바꾸면 또 다른 갈등을 유발할 것”이라는 이유를 댔다. 보수진영은 합창, 진보진영은 제창을 지지한다는 설명이다. 어차피 논란이 큰 만큼 참석자의 자율의사를 존중해, 부르고 싶은 사람만 따라 부르는 합창이 최선이라는 논리다.

그러면서 보훈처는 여론조사 결과를 제시했으나, 이 또한 자의적 해석 소지가 다분하다. 이달 4일 여론조사기관 조원씨앤아이가 실시한 1,010명 대상 설문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의 기념곡 지정과 제창 허용’에 대해 찬성 37.9%, 반대 32.4%, 모름 29.7%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반면 12일 리얼미터가 5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찬성이 53%로 반대 29.4%를 월등히 앞선 결과는 반영하지 않았다. 자체 여론조사를 하지 않은 채 신뢰성 논란을 겪고 있는 시중의 여론조사를 선별적으로 취사 선택한 것이다.

보훈처의 청와대 최종보고는 15일 밤에 이뤄졌다. 대면이 아닌 보훈처 담당부서에서 문서와 유선으로 보고를 진행했다. 청와대는 13일부터 3일간 보훈처의 논의과정을 계속 체크했을 뿐, 16일 오전 발표를 앞두고 정식보고는 처음 받는 자리였다. 당초 보훈처가 ‘제창 불가’로 굳힌 상황에서, 청와대의 통제조정 기능이 유명무실해진 것이다. 현기환 정무수석이 16일 오전 보훈처 발표에 앞서 박지원 원내대표에게 먼저 결과를 설명하는 성의를 보였지만, 이미 대통령과 야당의 약속은 헌신짝처럼 버려진 후였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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