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차 당대회로 더욱 공고해진 北체제
제재와 압박만으로 핵 포기 못 시켜
인내심 갖고 새로운 접근 전략 짜야
북한의 제 7차 노동당 대회 결과를 놓고 전문가들 사이에 이런저런 분석이 많지만 김정은 체제가 한층 공고해졌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번 당 대회에서 김정은은 최고수위인‘노동당 위원장’으로 받들어졌다. ‘영원한 주석’ 할아버지(김일성)와 ‘영원한 총비서’ 아버지(김정일) 반열의 절대적 지도자 위상을 구축한 거다. 그가 유훈통치에서 벗어나 독자 브랜드에 기반한 자신의 시대를 열었다는 뜻이다. 정치국 등 당 주요 기구의 재정비로 아버지 대 선군정치로 흔들렸던 당-국가 체제의 제도적 완성도를 높이기도 했다.
그 위에 핵이 얹어졌다. 헌법에 이어 그 상위 개념인 당 규약에도 핵 보유국을 명시하고 핵ㆍ경제 병진노선을 항구전략으로 못박았다. 김정은 체제 들어 실시된 두 차례 핵실험과 장거리로켓 발사 및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실험 등을 치적으로 삼아서다. 김정은 정권에 핵은 협상수단을 넘어 체제 정당성의 핵심이자 내부결속을 이끌어내는 수단임이 이번 당 대회를 통해 더욱 분명해졌다. 북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그만큼 더 희박해졌다.
7차 당 대회 이후 강화된 핵 능력을 바탕으로 더욱 공고해진 김정은 체제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우리만이 아니라 중국과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고민이지만 가장 답답하고 곤혹스러운 것은 우리다. 박근혜 정부는 내심 김정은 체제의 조기붕괴를 기대해 왔다.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발사 이후 개성공단을 폐쇄하고 유엔안보리의 사상 최강 대북제재 이행에 앞장을 선 것도 그 기대의 연장선이다. 하지만 현실은 기대와는 반대로 전개되고 있다.
물론 북한이 핵 무력 강화에 어떤 변화 가능성도 보이지 않은 이상 우리 정부는 지금까지 해오던 대북 제재 압박 정책을 이어가지 않을 수 없다. 김정은은 이번에 당 중앙위원회 보고를 통해 남측에 군사회담을 제안했지만 진정성이 뒷받침 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북한이 16일 정부ㆍ정당ㆍ단체 명의의 공동성명을 통해 남한 당국과의 대화용의를 밝힌 것도 마찬가지여서 정부가 호응할 리 만무하다. 당 대회 후 북의 대화공세가 이어지라는 것은 예상됐던 바다.
하지만 김정은 체제의 조기붕괴가 난망이라면 제재ㆍ압박만이 능사가 아니다. 김정은 체제가 10년, 20년을 버티며 핵ㆍ경제 병진을 계속하도록 방치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김정은 체제를 현실로 인정하고 대화와 협상의 상대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박근혜 정부 남은 임기 1년 9개월 동안에 갑작스러운 정책 전환은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다음 정부까지를 내다보며 중ㆍ장기적으로 대북정책 방향을 재정립해 나가야 한다.
김정은 정권도 핵ㆍ경제 병진 노선을 고수해 나가는 데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핵무력 강화와 경제발전은 상호 모순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자립ㆍ자강을 강조해도 외부 도움 없이, 더구나 중국과 러시아 등 전통적 우방이 제재에 동참하는 속에서 김정은이 약속한 인민생활 향상은 불가능하다. 결국 김정은 정권도 어느 시점에서는 타협을 피하기 어렵다.
북한의 핵 능력 과시는 허장성세의 측면이 강하다. 원래부터 실제 이상으로 핵 능력을 부풀려왔던 북한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 허장성세도 짐짓 인정해줄 필요가 있다. 북한의 불안을 완화시켜 대화의 틀로 나올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당분간 제재는 계속하더라도 요란하게 선전하며 할 이유는 없다. 고통을 충분히 느끼게 하되 감정까지 상하게 하는 것은 국면 전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4ㆍ13 총선 직전 북한 해외 식당 종업원 집단 귀순의 요란한 발표는 남북관계에 두고두고 부담이 될 것이다.
지금 분위기라면 김정은 정권은 어떤 제재ㆍ압박, 어떤 보상으로도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내 1차적으로 핵 능력을 동결시키고 궁극적으로 폐기 수순으로 나아가는 장기 전략을 짜야 한다. 인내심을 갖고 그들에게 핵 없이 생존이 가능하다는 비전을 제시하고 신뢰를 갖게 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이계성 논설실장 wk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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