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해 발간된 회고록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한 이유를 정운찬 대권 후보론과 결부시켜 파문이 일었다. 이 전 대통령은 “내가 세종시 수정을 고리로 정운찬 총리 후보자를 대선 후보로 내세우려 한다는 의심을 사게 됐고, 박근혜 전 대표가 끝까지 수정안에 반대한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언급했다. 당시 청와대는 깊은 유감을 표명하며 반발해 한동안 긴장이 감돌았다. 진위는 알 수 없지만 박 대통령의 세종시 원안 고수가 이후 충청권에서 강력한 지지의 원동력이 됐음은 분명하다. 4ㆍ13 총선에서 야당이 압승을 거둔 가운데 유독 충청권에서 여당이 우세한 것도 이런 기류를 반영한 결과로 볼 수 있다.
▦ 충북 출신인 이원종 지역발전위원장의 대통령 비서실장 임명이 미묘한 파장을 낳고 있다. 같은 충북 출신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여권의 대선 후보로 영입하기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박 대통령과 반 총장 사이에서 메신저 역할을 하기에 제격이라는 것이다. 그 동안 반 총장에게 노골적 러브콜을 보낸 청와대와 친박계는 총선에서 여권 대선주자들이 초토화되면서 ‘반기문 카드’에 더욱 매달리는 모습이다. 충청권 친박 의원들은 연일 반기문 띄우기에 나서고 있다. 충남 출신인 정진석 원내대표와 반 총장과의 사이가 각별한 점도 예사롭지 않다.
▦ 청와대 비서실장 인사가 25일로 예정된 반 총장 방한을 앞두고 이뤄진 것도 공교롭다. 정치권은 이 기간 중 반 총장이 누구를 만나는지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특히 비공개 일정에 주목하고 있다. 서울에 체류하면서 여권 인사를 만날 수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최근 “반 총장을 만나보고 싶다”고 밝힌 것도 관심이다. 두 사람 회동이 성사될 경우 ‘충청 대망론’에 불이 붙을 전망이다.
▦ 반 총장이 대권 도전을 시사한 적은 없지만 국내 정치에 뜻이 전혀 없지는 않다는 관측이 많다. 일각에선 대권에 야심을 갖고 차근차근 준비해왔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반기문 대망론’에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정치 경험 부재와 결단력 부족 등을 들지만 인위적인 대통령 만들기에 대한 거부감도 만만찮다. 청와대와 친박이 나서면 될 일도 안 된다는 게 총선에서 드러난 민심이라는 걸 벌써 잊은 모양이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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