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가 16일 “올해 36주년 5ㆍ18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공식 식순에 포함해 합창단이 합창하고, 원하는 사람은 따라 부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야당과 진보진영이 요구한 제창 형식으로의 환원을 끝내 거부했다. 보훈처는 “정부기념식이 국민 통합을 위해 한마음으로 진행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은 찬반 의견이 첨예하게 나뉘어 있는 상황”이라며 “참여자에게 제창방식을 강요해 또 다른 갈등을 유발해서는 안 된다는 게 보훈ㆍ안보단체와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이라고 설명했다.
보훈ㆍ안보단체 전문가들의 의견을 이유로 한 근시안적 결정이다. 우선 이 노래가 북한에서도 불려지고 있고, 노래 탄생 배경이 반체제적이라는 보수단체의 반대 논리는 반대를 위한 반대에 불과하다. 북한이 이용하는 게 문제라면 ‘고향의 봄’이나 ‘우리의 소원은 통일’같은 노래도 초등학생에게 가르치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우리나라의 저력과 자부심을 무시한 채 여전히 냉전적 사고나 보수ㆍ진보의 대결적 자세에 매달린 결과다. 더불어 1987년 6월 항쟁 당시 모든 집회와 시위 현장에서 대다수 참가자들이 민주화의 상징으로 이 노래를 불렀다는 점에서 ‘반체제 노래’ 운운은 당시 민주화 운동에 동참한 국민에 대한 모독이다.
보훈처의 합창 유지 결정에 야당의 반발은 물론이고 여당의 유감이 표명된 것만 봐도 그런 이치는 어긋남이 없다.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굳이 협치를 위한 정부 양보로 볼 것까지도 없다. 식민지를 경험한 나라 가운데 유일하게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나라로서의 국민적 자부심, 나라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으로 보면 그만이다. 결국 정부의 결정은 보수 정부의 협량(狹量)을 자인하는 꼴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여야 3당 대표를 만나 “국론분열이 생기지 않는 좋은 방안을 마련할 것을 지시하겠다”고 밝혀 대승적 검토가 점쳐졌지만, 끝내 스스로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애초에 합창과 제창에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제창이라고 모든 참석자가 반드시 불러야 한다거나 합창이라고 어느 누구도 따라 불러서는 안 된다면 그것은 민주사회의 참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멀쩡히 제창돼 오던 노래를 정부가 갑자기 합창으로 바꾸어 평지풍파를 불러일으켰으면, 이를 바로잡아 국가적 논란을 해소하는 것 또한 정부의 당연한 책무다. 5ㆍ18 기념식은 아직 하루가 남았다. 합창 유지 결정을 번복하기에 결코 부족하지 않은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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