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던시 프로그램은 거주 공간 등 경제적 지원을 통해 작가들이 창작 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돕는 사업을 의미한다. 레지던시에 입주한 작가들은 참여 작가들 간의 교류 및 미술계 인사들과 자연스럽게 접촉할 수도 있어 향후 예술활동에 간접적인 도움을 받기도 한다. 1990년대 후반 등장한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국내 120여 개에 이를 정도로 활성화돼 있다.
그러나 양적 성장과는 별개로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시행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관광 등 사업과 무리하게 연계돼 있어 오히려 창작활동을 방해한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미술계 일부에서는 사용이 뜸하거나 버려진 장소를 재활용하는 방안으로 시행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작가들을 사회적ㆍ문화적 고립에 빠뜨릴 수 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2014년 국내 레지던시 공간은 절반 이상이 사용되지 않는 시설(29%)과 폐교(28%)다. 인천시에서 추진 중인 ‘섬 레지던시’도 비슷한 맥락이다. 섬의 유휴 공간을 창작 공간으로 바꾼다는 내용의 프로그램에서 “최대한 가까운 섬을 찾기 위해 섬 투어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것 외에 ‘섬’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한 거주환경에 대한 구체적 논의는 없다. 일부 전문가들은 “더 큰 문제는 공간 재사용을 위해 불러들인 작가들을 관광 자원의 도구로 이용하겠다는 발상”이라고 지적한다. 아직 구체적인 섬 위치나 예산 등이 정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업을 담당하는 관광진흥과 관계자는 “사업이 정착되면 자연히 관광이 따라올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막연한 기대감만 드러내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지원금에 대한 대가로 지역 행사 참여, 지역 시설 사용 의무 등 예술창작과 거리가 먼 과도한 조건을 요구하는 경우도 많다. 지난해 부산 감천문화마을 레지던시 역시 ‘주민과 방문객 대상 체험행사 운영’ ‘시설물 내부 상시 개방’ 등 까다로운 입주 조건 탓에 작가 모집에 어려움을 겪었다. 부산시 관계자는 “시행 단계에서 레지던시 개방 일수를 조정하는 등 조건을 완화했고 현재 4명의 작가가 입주한 상태”라고 말했다.
참여 작가들에게 지역성을 띤 작품 제작을 할 것을 요구하는 것도 문제로 제기된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작가들과 상의 없이 지자체 성격과 입맛에 맞는 작품 제작 방향을 정해 놓아 “참여 작가들의 창작의 자유를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창작의 흐름을 끊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수요가 공급을 한참 앞선다. 그만큼 예술가들의 형편이 녹록하지 않다는 방증이다. 문체부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5,000여 예술인 중 과반은 다른 직업을 갖고 있었으며, 이들이 예술활동만으로 벌어들인 연 수입은 평균 1,255만원에 불과했다. 예술만으로 먹고 사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한 평론가는 “미적 이해 없이 각종 행정 사업에 예술을 동원하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며 “지자체마다 고유한 지원 방향과 방식 등을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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