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관리법 시행 전 유통 화학물질
정부 “오래 써 와서 안전…단계적 검사”
3만7000여종 중 유해성 심사 2% 안 돼
애경 가습기 살균제 원료도 기존물질로
정부가 지정한 기존화학물질 3만7,000여종 가운데 유해성을 확인한 비율이 2% 미만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탈취제 등 생활화학제품은 기존화학물질 표시를 의무화하고 있지 않아 소비자들의 알 권리가 침해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게티이미지뱅크

화학물질 3만7,000여종이 오래 전부터 사용되고 있다는 이유로 안전성 검증 없이 유통되고 있다. 지금까지 정부가 유해성 심사를 한 물질이 2%가 채 안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소독제 탈취제 등 생활화학제품은 성분 표시조차 의무 사항이 아니어서 소비자들은 어떤 성분이 들어갔는지도 모르는 채 사용하고 있다.

15일 환경부와 국립환경과학원에 따르면 1991년 유해화학물질관리법 시행 당시 기존화학물질로 지정된 3만7,000여종 중 지난해까지 정부가 유해성 검사를 실시한 것은 600여건에 그쳤다.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은 1991년 이후 새로 제조하거나 수입하는 화학물질에 대해 유해성 심사를 의무화하고, 이미 유통되고 있는 물질은 기존화학물질로 지정했다. 기존화학물질에 대해 당시 환경부는 수가 방대한데다 “오래 전부터 써와서 안전하다고 볼 수 있다”며 전수조사를 하지 않고 단계적으로 유해성 검사를 실시해 나가기로 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한꺼번에 전수조사를 하기에는) 여건이 따라주지 않아 우선순위를 정해 유독물질 판정을 하고 있다”고 해명했지만 25년이 지난 지금까지 98%를 방치한 셈이다. 당시 지정된 기존화학물질은 현재 국내 유통 중인 화학물질 4만여종의 약 92%를 차지한다.

하지만 가습기 살균제처럼 오래 써왔던 물질이라도 독성이 있을 수 있어 소비자들의 안전은 위험에 노출돼 있다. 애경의 가습기메이트에 사용된 클로로메칠이소치아졸리논(CMIT)과 메칠이소치아졸리논(MIT)도 2012년 유독물질로 지정되기 전까지 기존화학물질로 추가적인 유해성 심사 없이 사용됐다. 송기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변호사는 “현 화학물질 관리체계는 신규물질 검사를 우선시하고 절대 다수의 기존물질은 외면하는 폭탄 돌리기와 같다”며 “정부는 안전성이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모든 물질에 대해 검사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별개로 실생활에서 자주 쓰이는 생활화학제품은 아예 성분이 공개되지 않아 소비자의 알 권리가 침해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을 시행하며 소독제와 탈취제, 방향제 등 15종을 생활화학제품으로 지정했다. 이들 제품에 대해선 정부가 지정한 유독물질 870종과 아세트알데하이드 등 발암물질 129종을 제외한 성분은 표시할 의무가 없다. 탈취제 페브리즈도 유해한 살균제 성분이 들어있다는 주장이 최근 제기됐는데, 성분 표시가 없어 논란이 커지고 있다. 임종한 인하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국내에서 유독물로 인정되지 않았어도 해외에서 논란이 되는 물질이 있으므로 유럽처럼 모든 화학 성분을 공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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