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간 1400여회 여진 계속
공항 벽면 금 가 곳곳 접근금지
주민들 소고체육관서 집단생활
70대 할머니 “남편 지진으로 잃어
여진 탓 3일장도 못 치렀다” 눈물
한때 장염 돌아 노약자들 고역
전국서 달려온 자원봉사자들
잔해 걷어내고 피해자들 위로
지난달 14일과 16일 연쇄 강진을 맞은 일본 구마모토(熊本)는 아직도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었다. 연쇄 강진 한 달째를 맞아 찾은 지진 현장의 복구는 더뎠고 갈갈이 찢겨진 삶의 터전은 폐허 그대로 속살을 노출하고 있었다. 보금자리에서 쫓겨난 이재민들은 기약없는 피난 생활에 지칠대로 지쳐 생의 의지마저 없어 보였다. 특히 주민들은 아직도 여진 악몽에 시달린다면서 불안감을 떨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구마모토 주변으로는 지금까지 1,400회 이상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장례식도 못 치르고 한 달째 대피소 생활
구마모토로 향하는 길에서는 복구의 손길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한달 전 후쿠오카(福岡)공항에 내려 갈기갈기 찢긴 고속도로를 우회하며 10시간이나 걸렸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구마모토공항의 운항이 재개돼 도쿄에서 1시간 50분만에 도착했다. 공항벽면엔 여전히 금이 가 곳곳이 접근금지였지만 지역캐릭터인 ‘구마몽(곰 형상)’이 “많은 지원에 감사합니다”“힘내자! 구마모토”를 외치는 플래카드가 곳곳에 내걸렸다.
14일 찾은 최대 피해 현장인 마시키마치(益城町)에서는 복구의 손길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자원봉사자들까지 힘을 합쳐 도로복구와 하수도 복원을 하느라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동네 풍경은 을씨년스럽기 그지없었다. 대부분 주민들은 대피소인 소고체육관에서 집단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재민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울 지경이었다.
서너명이 모여 있는 할머니들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고 이야기를 들어봤다. 야마나카 미사카(山中見榮ㆍ75) 할머니는 “16일 두 번째 지진으로 2층에 있던 남편이 빠져 나오지 못하고 하늘로 갔다”며 목소리에 힘조차 없었다. 그는 “경찰이 사망을 확인 뒤에 가족들만 조촐히 장례를 지냈다”며 “여진이 계속돼 3일장도 못 치렀다”고 했다.
야마나카 할머니의 경우는 그나마 사정이 좋은 경우다. 구마모토 시청에 따르면 이번 지진으로 1만여명의 피난민들이 아직까지 대피소에 생활하고 있으며 피난생활의 장기화로 아직 희생자 장례식을 치르지 못한 가정도 상당수다. 20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마사키마치에서도 장례식은 불과 3차례 열리는 데 그쳤다.
대피소 생활의 고충도 이루 말할 수 없다. 소고체육관 대피소에서는 한 차례 장염까지 돌았다고 한다. 시내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히로타 나오코(廣田直子)씨는 “피난소에 감기약과 위장약이 가장 필요하다”며 “탈진하지 않고, 침울해지지 않고, 청결을 유지해야 한다, 몸을 수시로 움직이도록 지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자원봉사자 발길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
지역 경제도 강타를 당했다. 농림수산업 피해액이 사상 최대 규모인 1,345억엔(약 1조4,500억원)에 달하면서 지역 경제는 휘청거리고 있다. 올해 모내기를 포기한 곳도 상당수다. 지진으로 여행을 취소한 이들이 늘어나면서 관광수입도 급감할 전망이다. 규슈관광당국에 따르면 구마모토와 아소(阿蘇)를 제외한 규슈 전체에서 숙박시설 예약 취소는 전체 70만건에 달한다. 구마모토 취소분을 더할 경우 피해액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마시키마치 중심부 가옥들도 대부분 주저앉아 있었다. 한 달 전에는 반쯤 기울었던 것이여진 등으로 아예 무너져 내린 것이다. 구마모토 기상청은 “구마모토와 오이타(大分) 두 현에서 지진활동이 계속되고 있어 앞으로도 최소 1개월간은 최대 진도 6의 여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며 강진에 주의할 것을 당부했다.
주민들이 비운 자리는 자원봉사자들이 메우고 있었다. 친구들과 가가와(香川)현에서 8시간 운전해 이날 새벽 3시에 도착했다는 이타쿠라(板倉ㆍ36)씨 “지진은 언제 누구에게 일어날지 모르는 일이다”며 친구 2명과 함께 건물 속 잔해를 치우는 작업에 여념이 없다. 관리영양사를 전공한 동료 2명과 함께 오사카(大阪)와 효고(兵庫)현에서 달려왔다는 여대생 데즈카(手塚ㆍ22)씨는 안전헬멧을 쓴 채 주변청소에 분주했다. 데즈카씨는 “슬퍼하는 분들과 아이들에게 ‘간바레(힘내)’를 반복해 말씀드리고 있다”고 했다.
절망의 폐허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이재민들도 만날 수 있었다. 무너진 집에서 중요 서류들을 찾고 있던 우치무라 미유키(內村幸ㆍ47)는 “쌍둥이 아들 둘이 고3이라 걱정이 많지만 취업 준비에 열심이라 잘 될 것 같다”며 “배구부와 핸드볼부 과외활동을 하러 나간 두 아들이 나에게 희망”이라고 했다. 구마모토 지진대책본부도 지진으로 직장을 잃은 이들을 임시직원으로 고용하는 새로운 지원책을 마련했다. 18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오는 23일부터 모집을 시작해 50명 가량을 고용, 3개월간 피난처 운영 등의 업무를 맡길 계획이다.
구마모토=박석원 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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