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이들이 당신의 집에 와 모두를 죽이고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한다. 당신이 스스로 신이라고 생각하는 동안 모두가 죽었다.”
1944년 고향 크림반도에서 강제로 쫓겨나야 했던 타타르족의 고통을 한스럽게 토해낸 우크라이나 가수 자말라(본명 수산나 자말라디노바)가 14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2016’에서 우승 트로피를 차지했다. 크림반도의 소수민족 타타르족 출신인 자말라가 부른 우승곡 ‘1944’는 그의 증조모가 겪은 경험담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자말라의 우승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자말라의 자작곡 ‘1944’에 정치적 색채가 다분했기 때문이다. 노랫말 어디에서도 러시아를 언급하진 않지만 구소련의 강제이주 정책을 모티프로 한 게 분명해 즉각 러시아의 반발을 불러왔다. 자말라 스스로 1944년 구소련 스탈린 정권에 의해 우크라이나 등지로 쫓겨 난 25만명의 타타르족 조상들을 위로하기 위해 노래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특히 노래 도입부의 “이방인들이 왔다. 우리 가족 모두를 죽였다”라는 가사는 러시아가 2014년 우크라이나 영토였던 크림반도를 강제합병한 사건을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논란을 증폭시켰다.
러시아는 즉각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가 정치성을 띤 노래를 규제한다는 점에서 이의를 제기했다. 자말라도 결선에 앞서 영국 일간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물론 1944는 2014년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며 “(1944년과 2014년) 두 해는 내 삶에 매우 큰 슬픔을 가져다 줬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회 주최 측은 문제가 없다며 논란을 일축했다.
콘테스트 과정에서도 극적 드라마가 이어졌다. 심사위원단 평가와 시청자 점수를 절반씩 반영하는 최종 심사에 오른 자말라는 심사위원 점수에서는 경쟁자들에게 뒤졌지만 시청자 투표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역전에 성공했다. 특히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혔던 러시아 대표 세르게이 라자레프는 3위로 처졌다. 호주 대표로 출전한 한국계 임다미는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준우승을 차지했다.
러시아와 앙숙관계인 우크라이나는 자말라의 우승소식에 열광의 도가니에 빠졌다.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우승자 발표 직후 트위터에 “믿을 수 없는 무대와 승리였다. 우크라이나 전체가 자말라에게 마음에서 우러나온 감사를 보낸다”며 기쁨을 표했다. 자말라는 “노래로 진실을 전하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고 확신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김정원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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