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가 고통ㆍ절망에 잠겨 있어 서울시장직으론 책임 못 면해”
300명 이상 참석 출정식 방불
朴측 “사실상 대권 레이스 시작”
“대북정책 DJ 지혜 아쉬운 때” 호남 민심 향해 적극적 구애
야권의 텃밭 광주를 방문 중인 박원순 서울시장이 13일 “천하가 고통과 절망 속에 잠겨있는데 아직도 편히 잠들 수 없다”며 “서울시장으로서 최선을 다한 것으로 책임을 모면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서울시장 직으로는 책임을 다할 수 없어, 서울시장보다 더 큰 일을 도모하겠다는 뜻이다. 야권 대권 후보로 거론되는 박 시장이 대권 레이스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 시장은 이날 전남대에서 ‘1980년 5월 광주가 2016년 5월의 광주에게?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띄우는 시그널’ 이란 주제로 특강을 가졌다. 300명이 넘는 학생과 교직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40분간 이어진 이날 강연은 대선 출정식을 방불케 했다. 그는 “뒤로 숨지 않겠다. 여러분들의 선배인 박관현, 윤상원 열사처럼 역사의 대열에 앞장서겠다”며 “역사의 부름 앞에 부끄럽지 않도록 더 행동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민주, 인권, 평화, 대동의 5ㆍ18 광주민주화 운동의 정신은 새로운 시대와 만나 함께 호흡하고, 새로운 가치로 바꾸고, 국민의 삶을 바꿔낼 것”이라며 “끈덕진 마음으로 1980년 5월의 꿈을 함께 이뤄가자”고 독려했다. 박 시장 측 관계자는 이날 행사에 대해 “사실상 대권 후보 행보 시작으로 봐도 된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또 호남 민심을 향해 적극적인 구애를 펼치기도 했다. 정부의 금강산관광, 개성공단 관련 대북정책을 비판하는 대목에서는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인식을 갖고 남북문제에 접근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지혜가 아쉽다”고 했고, 다가오는 5ㆍ18에 대해선 “1980년 5월 가두방송이 절규할 때, 나는 어디서 무엇을 했던가” 라고 자문했다. 그는 “(우등생으로서의) 자랑스러웠던 나의 역사는 광주 앞에만 서면 흑역사가 됐다“며 “지금도 열사들의 이야기는 읽어 내기가 어려울 만큼 힘들다”고도 했다. 민주화 항쟁에 참여하지 못한 데 대한 부채를 고백한 것과 동시에 그에 대한 호남 민심의 용서를 구한 것으로 해석된다.
박 시장은 이번 총선 결과와 관련, “수가재주 역가복주(水可載舟 亦可覆舟), 국민은 물과 같아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엎을 수도 있다는 말처럼 지금 서슬퍼런 심판의 칼 끝이 다음에는 어디로 향할지 모른다”고 평가했다. 역시 내년 대선을 염두에 둔 발언이라는 분석이다.
박 시장 측은 ‘사실상 대선 출정 선언’의 효과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시기와 장소를 전략적으로 택한 것으로 보인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야권의 뿌리인 호남의 지지 없이 야권 대선 후보가 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문재인, 안철수 두 사람이 부각된 총선을 거치면서 호남 민심에서 멀어진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해놓고 있을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남대 측은 지난 3월부터 강연을 요청했지만, 박 시장 측은 광주 방문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는 시기를 저울질하다 총선 1개월 후, 5ㆍ18 직전으로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장’이라는 한계 때문에 아무 때나 호남을 찾을 수도 없어 민주화의 상징인 5ㆍ18을 활용했다는 얘기다.
박 시장은 이날 특강에 이어 광주시의원, 5ㆍ18단체 회원들, 송정시장 청년상인들을 만났다. 야권의 한 인사는 “오늘만큼은 서울시장이 아닌 광주시장 같았다”고 평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광주=정민승 기자 msj@hankookiln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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