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중국 대륙을 휩쓴 ‘문화 혁명’은 유토피아적 공산주의를 꿈꾼 마오쩌둥(毛澤東ㆍ1893~1976)의 주도로 진행된 대규모 사상ㆍ정치ㆍ계급 투쟁이다. 중국 공산당이 1966년 5월 16일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5.16통지’를 통과시키면서 문화대혁명이 본격 시작돼 마오쩌둥이 숨을 거둔 1976년까지 10년간 이어졌다.
낡은 사상과 문화를 소유한 부르주아 계급을 타파한다는 좌경적 관점에서 출발, 만민평등과 조직 타파를 부르짖으며 노동자, 농민 등 무산계급(無産階級)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특히 대학생과 중ㆍ고교생들로 구성된 홍위병들은 ‘부르주아적 낡은 질서’라고 지목한 대상들을 난폭하게 공격했다. 홍콩 배우 고 장국영의 열연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영화 패왕별희(1993년)도 당시 문화혁명의 척결 대상이었던 경극의 몰락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마오쩌둥은 문혁의 주축인 홍위병들에 대해 “나를 실망시켰다”며 무력 진압에 나섰고, 홍위병도 내부 조직 약화 등으로 점차 소멸됐다. 중국 공산당도 “문혁은 ‘마오(毛)의 과오’로 시작됐고 린뱌오(林彪)와 4인방(四人幇) 등 반혁명 집단에 이용당해 중화 민족에 심각한 재난을 가져 온 정치 운동”으로 규정했다.
문혁 주인공들의 말로도 비참했다. ‘마오쩌둥의 후계자’임을 자처한 린뱌오(林彪)는 마오쩌둥의 ‘대약진 정책’을 지지하면서 중국 정치 전면에 등장했지만, 마오쩌둥의 견제로 오히려 비판의 대상이 됐고 마오쩌둥 암살 계획 마저 실패로 돌아가면서 위기에 몰렸다. 1971년 가족과 함께 비행기로 소련 망명길에 올랐으나 도중에 몽골 지역에서 추락사 했다. 일각에서는 미사일 격추설까지 제기되고 있다.
마오쩌둥의 부인 장칭(江靑)을 비롯해 왕훙원(王洪文), 장춘자오(張春橋), 야오원위안(姚文元) 등 문혁 기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4인방도 마오쩌둥 사망 후 한달 만에 쿠데타 음모 혐의로 모두 체포돼 사형, 종신형 등을 선고 받고 자살하거나 병사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강주형기자 cubi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