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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졸부와 전관 변호사

입력
2016.05.1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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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판사나 검사를 그만 두면 변호사를 하는 게 정해진 코스다. 변호사로서 쓰임새가 많은 고위 판검사 출신은 더욱 그렇다. 그런 면에서 돋보이는 사람이 조무제 전 대법관이다. 그는 2004년 대법관을 그만둔 뒤 법무법인의 거액 영입 제의를 뒤로 하고 모교인 동아대에서 후학을 가르쳤다. 그의 신고재산은 1993년 6,434만원이었고 5년 뒤 대법관 취임 때는 7,000만원이었다. 이 때문에 가난한 선비를 이르는 ‘딸깍발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그러나 모교에는 발전기금 8,000만원을 내놓았다.

▦ 자신의 이름을 딴 법 때문에 요즘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김영란 전 대법관도 변호사 대신 교수를 선택했다. 퇴임 즈음에 “대법관 경험을 살려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방안을 찾겠다”고 하더니 서강대 로스쿨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국민권익위원장으로 재직하던 2012년에는 부패를 막겠다며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을 제안했는데 이것이 바로 김영란법이다. 전수안 전 대법관 역시 2012년 퇴임한 뒤 공익을 위한 사단법인의 고문으로 활동할 뿐 돈을 벌기 위한 변호사 활동은 하지 않고 있다.

▦ 안대희 전 대법관은 변호사 개업 다섯 달 만에 16억원을 벌었다. ‘국민검사’라는 명예로운 별명에 팬클럽까지 있었던 그는 국무총리로 지명됐다가 바로 이 수임료 문제로 사퇴했다. 하지만 이것도 정운호 사건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부장판사를 지낸 최유정 변호사는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로부터 50억원을 챙겼고 이숨투자자문에서도 같은 액수를 받았다. 정 대표 구명 로비 의혹을 받고 있는 홍만표 변호사는 2013년에만 91억원을 벌었다. 대검 요직을 거친 그가 전관예우 없이 이만큼 벌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 이들의 수임료도 수임료지만, 윤리의식 없는 졸부의 돈 놀이에 전직 판검사가 최소한의 품위마저 팽개치고 달려든 게 놀랍다. 판검사 출신 변호사가 법원과 검찰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전관예우가 여전하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지금도 전관예우금지법이 있지만 힘이 없다. 일부에서는 판검사의 변호사 개업 자체를 막자는 주장까지 나온다. 문학평론가 황현산은 “나는 전관예우라는 말을 죽을 때까지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며 “검사 판사 이런 사람들이 드러내 놓고 엉터리 재판을 하겠다는 말이 아닌가”라고 혀를 찼다.

/ 박광희 논설위원 kh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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