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중국제일(第一)감옥’으로 불리는 친청(秦城)감옥을 찾아가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행정구역상으로는 베이징(北京)시내인데도 택시기사 5명에게 연이어 퇴짜를 맞았다. 한 기사는 “공안에게 조사받을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충고를 하기도 했다.
결국 지인의 승용차를 얻어탔지만 네비게이션에선 친청감옥을 찾을 수 없었다. 바이두(百度) 지도검색 서비스를 이용해 1시간 30분 넘게 달려 도착한 곳 역시 목적지와는 다소 떨어진 한적한 시골마을이었다. 70대 노파의 안내로 2,3분 정도 차를 달려 500m 남짓한 2차선 가로수길에 들어섰더니 그제서야 정면 끄트머리에 친청감옥이 나타났다.
적막한 시골 한 켠에 위치… 분위기 자체가 위압적
친청감옥은 베이징시 창핑(昌平)구 샤오탕(小湯)산 근처에 위치해 있다. 중국의 감옥은 모두 사법부에서 관할하지만, 이 곳은 유일하게 공안부에서 통제한다. 수감자 대부분은 고위급 부패사범이나 정치범들이다. 1958년 구 소련의 지원으로 완공된 친청감옥의 존재는 한동안 비밀에 부쳐졌고 인근 주민들도 군사체육시설 정도로 여겼다고 한다.
친청감옥이 세인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76년 마오쩌둥(毛澤東)의 네번째 부인이자 문혁 4인방 중 한명인 장칭(江靑)이 수감되면서다. 천안문광장에서 150만명의 홍위병을 사열하는 등 서슬퍼런 문혁의 10년 광풍을 주도했던 그는 마오쩌둥 사망 후 체포돼 이 곳 친청감옥 20㎡의 좁은 감방에 수감돼 15년을 복역했다.
정문 양 옆으로 길게 둘러쳐진 5m 높이의 담벼락은 천하를 호령했던 여장부의 기세를 꺾어놓기에 충분해 보였다. 곳곳에 설치된 감시카메라와 담벼락 위 철조망은 물론 초병 한명조차 보이지 않는 상황 자체가 주는 위압감이 상당했다. 그런데 400m 정도 되는 오른편 담벼락을 돌아가자 일반 철제 가림막 사이로 마치 잘 정돈된 공원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3,4층 높이의 현대식 건물들이 바로 감옥인 듯했다. 20여명의 인부들이 정원 손질을 위해 대기중인 모습도 보였다. 정문 앞에서 봤던 예닐곱대의 고급승용차는 모두 면회 온 사람들의 차일 거라고 했다.
하지만 이 곳 역시 스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가림막 사이로 10여분을 지켜봤지만 인기척이라곤 전혀 없었다. 그 와중에 군인들의 기합과 함성소리가 간간히 들려왔다. 한 인부는 “안에서 특수부대 군인들이 훈련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평온한 인근 마을 주민들도 ‘문혁’ 얘기엔 화들짝
인근 마을은 그야말로 평온한 여느 시골마을과 다를 게 없었다. 일상생활에선 친청감옥의 존재를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했다. 높다란 담벼락 아래로 양떼를 몰아오는 주민도 보였을 정도다.
하지만 문혁 얘기를 꺼내자 분위기가 금새 냉랭해졌다. 친절하게 길안내를 해줬던 그 노파도 얼굴을 찌푸린 채 단 한마디도 대꾸하지 않았다. 한 60대 노인에게 장칭의 수감 사실을 알고 있는지 묻자 “그 여자는 악마”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40대 중후반쯤 되어 보이는 한 남성은 “이 곳에서도 문혁 때 동네사람 여러 명이 죽었다고 한다”면서 “어른들에겐 문혁 얘기 절대 꺼내지 말라”고 신신당부하기도 했다. 문혁이 시작된 지는 반세기가 됐고 공식적으로 종료된 지도 40년이 흘렀지만 당시의 광기는 한적한 시골마을 사람들의 가슴 한 켠을 여전히 짓누르고 있는 듯했다.
베이징=양정대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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