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청의 무리수, 국회마비 사태의 원인
15대 국회서는 대통령의 레임덕 초래해
협력ㆍ경쟁 조화, 원내대표 재량권 달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얼마 전 국회 원 구성 협상 전에 새누리당 출신 무소속 의원들의 복당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원내 2당으로 만든 민의를 받드는 게 옳다는 이유였다. 이를 두고 새누리당 일각에서는 유승민 무소속 의원의 복당을 지연시켜 당권 경쟁에 뛰어드는 것을 견제하기 위한 책략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됐다. 여의도에서는 모든 행위가 정치적으로 해석된다. 복당처럼 큰 일이면 온갖 추측이 나돌 만하다.
그렇다면 선거 전부터 복당을 원했던 이들을 받아들여 새누리당이 원내 1당을 되찾고, 국회의장 자리와 상임위원장 배정 등 원 구성 협상에서 유리한 입장에 서려고 했던 것이 나은 선택이었을까. 새누리당에 혹시라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한치 앞도 못 본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우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의 거센 반발은 당연지사다. 민의에 어긋난다는 명분이 탄탄하다. 원 구성의 기약 없는 지연도 정해진 수순이다. 19대 국회와 달리 열심히 일하는 국회 모습을 보여주기는커녕 20대 국회 시작 단계에서 마비상태에 빠지기 십상이다.
한 편의 시나리오라고 한다면 20대 국회의 복사판인 1996년 15대 국회를 되돌아보면 된다. 김영삼의 신한국당, 김대중의 새정치국민회의, 김종필의 자유민주연합이 3당 체제를 이룬 15대 국회는 원 구성이 35일 지연됐다. 당시로선 역대 최장기록이다. 과반 의석을 얻지 못한 신한국당이 무리하게 야당과 무소속 의원 영입작업을 벌여 야당 반발에 부딪친 탓이다. 한 달여 동안 실력 행사와 몸싸움 등 국회에서 온갖 난리가 났다.
지금도 회자되는 96년 12월26일 새벽의 노동법 날치기 파동은 청와대가 무리를 하다가 덧난 사례다. 여야 협상에서 노동법 처리시기가 지연되자 새누리당 단독 처리를 요구하는 청와대의 강경한 입장이 있었다고 한다.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는 이듬해로 넘어갈 경우 법안 처리가 어렵다는 판단을 한 탓이다. 청와대가 “야당을 어떻게 믿느냐”며 연내 처리를 밀어붙였다고 한다. 당시 원내총무를 맡았던 서청원 의원을 다룬 책(‘우정은 변치 않을 때 아름답다’)에 나오는 내용이다. 노동계 파업과 국회 마비사태로 여권은 두 달 뒤 날치기 처리한 노동법을 재개정한다는 도장을 찍고서야 겨우 국회가 정상화했다. 노동법 날치기 파동은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레임덕을 부른 결정적 계기였다.
15대와 20대 국회의 차이를 굳이 들자면 3당 체제에 더해 국회선진화법이라는 장치가 더 있다. 타협을 강제하는 이중구조이지만 강경 드라이브 욕구를 억제하지 못하는 강경파는 늘 있게 마련이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청와대든 다 마찬가지다. 그 욕구가 공명심의 발호나 힘의 과신, 원칙에의 집착 등 어디서 비롯했든, 협상보다는 무리수를 택하게 돼 있다.
지금 여권과 야권의 역학구조, 힘의 세기는 50대 50 균형상태다. 비유하자면 삼륜차의 세바퀴가 같이 움직여야 굴러갈 수 있다. 삼륜차가 굴러가지 못하고 오래 서 있으면 타이어 바람이 빠지고, 녹이 슨다. 그래서 여야가 협치를 말한다. 그러나 정당이 추구하는 가치가 다른 상황에서 정책을 둘러싼 갈등과 경쟁 역시 불가피하다. 기업 생태계에서는 일찌감치 이를 코피티션(Copetition)으로 개념화했다. 경쟁하되 비용상승 등 위험요소는 최소화하고, 일정한 협력을 통해 상호 이익을 취하는 전략이다. 3당 체제는 협력과 경쟁의 조화를 시험하는 정치 무대라 할 수 있다. 서로가 서로를 탓하는 일이 정치적 일상이지만 누가 무리수를 두는지 유권자는 다 안다.
무리를 하지 않으려면 순리에 따라야 한다. 더불어 여야나 청와대가 특수한 집단논리에 집착해서는 타협이 될 수 없다. 19대 국회 당시 협상 테이블에 마주앉아서는 의견접근이 되다가도 당 최고회의나, 의원총회만 갔다 오면 사람이 달라지고, 입장이 달라지더라는 소리가 자주 들렸다. 원내대표의 재량권 부재에 따른 부작용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지금은 20대 국회의 성패가 달린 일이 됐다.
정진황 논설위원 jhch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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