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아주 큰 고구마
아까바 스에끼찌 지음ㆍ양미화 옮김
창비 발행ㆍ88쪽ㆍ1만원
“내일 고구마 캐러 가요.” “우아!” 선생님 말씀에 유치원 꼬마들 신이 났다. 왜 아닐까? 봄날 고사리 손으로 순을 놓으며, ‘가을쯤엔 내가 심은 고구마를 내가 캐어 맛나게 먹을 거야!’ 생각했을 터이니. 그런데 다음날 아침, 비가 내린다. “다음 주에 가기로 해요.” 아이들 난리난다. “싫어요. 싫어요. 싫어요. 우산 쓰면 되잖아요! 장화 신으면 되잖아요! 비옷 입으면 되잖아요!” 이유 있는 항변이다. 잠시 생각해 보자. 선생님은 어떻게 할까? 아니, 나라면 어쩔 것인가?
그림책 속의 선생님은 이렇게 아이들을 달랜다. “얘들아, 있잖아. 고구마는 한 밤 자면 쑥 자라고 두 밤 자면 쑥쑥 자라고 세 밤 자면 쑤우욱 자라. 네 밤 자고 다섯 밤 자고 여섯 밤 자고 일곱 밤 자면 엄청 크게 자라서 우리를 기다릴 거야.” 그러자 아이들이 궁금해 한다. “이만큼 커질까?” “아냐, 이~만큼 커져.” “아냐, 아냐. 이~~만큼 이~만큼 커져.” 상상하니 표현하고 싶다. “선생님, 고구마 그릴래요.” “종이 주세요. 물감 주세요. 붓 주세요.” 그렇지, 고구마 문제는 고구마로 풀어야지.
실망이 기대로 바뀌었다. 기대가 상상을 낳고, 상상이 표현을 자극했다. 아이들은 고구마를 캐러 가는 대신 고구마를 그리기 시작한다. 커다란 종이, 한 장으로 상상을 채울 수 없다. 석 장을 이어 붙여 시작한 그리기 놀이는 무려 열여섯 장에 이르러 끝이 났다. “어떻게 그렸어요?” 선생님이 그림을 보고 깜짝 놀란다. “에구구! 참말 아주 아주 큰 고구마네!” 질문을 던진다. “이렇게 큰 고구마 어떻게 캐지?” 아이들은 힘을 합쳐 삽질을 하고 줄다리기를 하는 해법을 내놓는다.
이어지는 질문과 해법, “아주 아주 큰 고구마 어떻게 옮길까?” 헬리콥터 두 대로. “진흙투성이야. 어떡하지?” 북북 박박 뽀드득 씻는다. “이제 뭐하지?” 수영장에 띄워 뱃놀이를 하고, 요리조리 깎아 고구마사우르스, 공룡을 만든다. 아이들이 맘껏 즐긴 뒤에, 선생님이 다시 묻는다. “재미있게 놀았어요? 이제 뭐 할래요?” 실컷 놀았으니 배가 고프다. “먹을래요.” 잘게 잘라, 튀김이며 군고구마, 맛탕을 만들어 잔치를 벌인다. 잔뜩 먹었더니 배가 볼록볼록, 뿡 뿌우웅 가스를 뿜어 하늘로 날아오른다. 까르르 까르르 우주여행을 하던 아이들, 저녁놀 지니 구름을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 놀이가 끝났다. 이야기도 끝났다. 선생님도, 아이들도, 독자들도 흡족하다.
좌절된 고구마 캐기는 어떻게 이처럼 신나는 표현과 상상의 놀이로 바뀌었을까? 실망을 기대로, 상상으로, 표현으로, 마침내는 협력과 나눔과 창의 가득한 놀이로 이어지게 한 사람은 누구인가? 선생님…, 사려 깊은 어른이 아이들을 바꾼다. 어른들의 언행이 이처럼 무겁다.
김장성 그림책작가ㆍ출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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