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나도 이제 시세를 타는 구나’싶죠. 스승 김병기 화백께 이런 얘기했더니 ‘이 사람아 지금 자본주의 사회엔 할 수 없어’ 하시더라고요.”
쑥스러우면서도 싫지만은 않은 표정이다. 1960~80년대 한국 화단을 대표했던 단색화 1세대, 조용익(83) 화백 얘기다. 정상화, 하종현 등 단색화 유행을 탄 화가들이 40~50년 만에 빛을 보며 승승장구한 것과 달리, 투병으로 점철된 최근 10년간 작가로서 그의 위상은 확실히 낮았다.
‘말하자면 잊혀진 작가’(윤진섭 미술평론가)였던 그가 다시 일어선 건 작년 11월 크리스티 홍콩 경매 때다. 1970년대 작품 두 점이 시작가보다 3배 가격에 낙찰됐다.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 조 화백은 올 2월 성곡미술관에서 회고전을 열었고, 3월엔 아시아 최대 아트페어 ‘아트바젤 홍콩’에 초대됐다. 아트바젤에서 그의 작품이 걸렸던 부스는 에드워드멀랭 갤러리. 갤러리는 내친 김에 13일부터 6월 18일까지 한달 간 개인전도 열기로 했다.
12일 만난 조용익 화백은 “확실히 바빠졌다. 성곡미술관 전시 뒤 그린 작품만 20여점”이라고 말했다. “우리 세대가 아트페어나 경매 이런 걸 싫어했어요. 속물스럽다고. 작년 초에 제자들이 기획사를 연결해주면서 작품을 아트페어 출품하라는데 첨엔 머뭇거렸지.”

조용익은 1960년대에는 프랑스 앵포르멜의 영향을 받아 추상 작업에, 1970년대엔 갓ㆍ한복ㆍ장구 등을 담은 반구상 작품에 집중했다. 1970년대 중반 단색화로 들어섰다. “늘 변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현대미술의 기본은 과거를 부정하는 것인데, 그건 자기부정부터 시작해야 해요. 자기를 부정할 때 남도 부정할 수 있는 거죠.”
박서보, 하종현 등 단색화 1세대 작가들이 단일 색을 칠하고 덮는 방식이라면, 조 화백은 색을 비우고 지우는 쪽이다. 7~8번 이상 밑칠 작업을 마친 뒤 마지막 겉면에 칠한 물감이 마르기 전 손가락, 나이프, 붓을 써서 밑색을 긁어내고 지우면서 균일한 형상을 연출한다. 여러 빛깔을 담으면서도, 아크릴물감의 특성을 살려 아주 얇은 ‘동양적 질감’을 만들어낸다. 10년 단위로 작품이 변하는 점도 주목 대상이다.

이날 전시 개막식에 참석한 아시아 최대 미술잡지 AAP의 발행인 겸 편집자인 일레인 엉은 “성곡미술관 회고전을 봤다”며 “1950년 대학 시절부터 끊임없이 스타일, 색감, 아이디어를 실험하며 독특하게 자신의 것을 만들어왔다”고 평했다. 에드워드멀랭 갤러리의 로레인 기앙 멀랭 디렉터 역시 “단색화 작가지만 자신의 스타일을 갱신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가능성이 있는 작가”라 평하면서 “진화하는 지점을 보여주고자 이번 전시에서는 각 시기별 다양한 스타일을 소개한다”고 말했다. 1974년 이후 대표작 18점이 걸렸다. 아델리언 우이(아트바젤 홍콩 디렉터), 조이스 찬(크리스티 홍콩 시니어스페셜리스트), 정도련(2019년 개관 예정인 M플러스 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등 홍콩 미술계 유명인사 100여명이 모였다. 멀랭 디렉터는 “이미 네 작품이 예약됐고 내년 런던 올리비에 멀랭 갤러리 개막전에서도 조용익 작품을 선보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홍콩=글ㆍ사진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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