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률적 10년 제한 위헌 결정
여성부, 성범죄 선고형량 따라
취업제한 기간 차등화 추진
범죄의 경중을 떠나 일괄적으로 10년으로 정해져 있는 성범죄자 취업제한 기간을 조정하는 법 개정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중한 성범죄자는 평생 병원, 학교 등에서 일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자신의 직업을 이용한 성범죄 등 재범 가능성이 높은 범죄자는 더욱 엄격히 취업을 제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11일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여성부는 아동ㆍ청소년 및 성인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초중고교, 병원, 아파트관리사무소 등에서 10년 간 일할 수 없도록 한 아동청소년성보호법(아청법) 개정안을 마련하고 있다. 지난 3월 헌법재판소가 “범행이 가볍고 재범 위험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사람까지 10년 동안 일률적으로 취업을 제한하는 것은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이 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헌재는 현행 10년을 상한으로 두고, 제한 기간을 차등화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성범죄자 취업제한제도’는 아동ㆍ청소년이 주로 이용하는 시설에서 성범죄 전력자가 이들에게 접근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지난 2006년 도입됐으며, 성범죄자는 학교, 체육시설, 병원 등 전국 52만4,000개 시설에 취업을 할 수 없다.
여성부는 지난달 말 열린 공청회에서 법원의 선고형량에 따라 취업 제한 기간을 10년 이내에서 차등화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벌금형 선고 시 2년, 3년 이하 징역ㆍ금고 선고 시 5년, 3년 초과 징역ㆍ금고 선고 시 10년 간 취업을 제한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상당수 전문가들은 차등화하되, 중한 범죄자의 경우 10년 이상, 최대 종신 취업제한을 새로 도입하자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강은영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중한 범죄자는 종신형으로 하고 가벼운 범죄자는 제한 기간을 짧게 하는 등 좀 더 다양하게 차등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외국은 성범죄자가 평생 아동ㆍ청소년 관련 시설에서 일할 수 없도록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미국은 주(州)에 따라 성범죄자가 최소 10~30년, 혹은 종신토록 학교나 어린이 관련 시설에 취업할 수 없다. 일부 주는 성범죄자가 학교로부터 약 300m 이내에서 일하는 것조차 금한다. 프랑스와 독일도 성범죄자의 취업을 영구적으로 제한하는 규정이 있다.
전문가들은 직무를 이용해 저지르는 성범죄는 더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낸다. 박병식 동국대 법학과 교수는 “예를 들어 환자는 의사의 말이나 행동에 저항하기가 힘든데 이런 권력관계를 이용해 (의사가) 성범죄를 저지를 경우에는 가중처벌해야 한다”며 “의료행위 중 강간 등을 범한 경우에는 영구히 퇴출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강은영 연구위원도 “직무를 이용한 성범죄는 자신의 직장에서 끊임없이 범죄를 계속 할 수 있기 때문에 재범 위험성이 높아지므로 좀더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부 관계자는 “현재 개정안에 대해 법률 자문을 받는 중”이라며 “종신 제한을 도입할지는 아직 언급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여성부는 각계 의견을 수렴해 다음 달쯤 개정안을 입법예고 할 예정이다.
남보라 기자 rar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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