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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 화학물질로 인한 피해 구제, 개인에게 떠넘길 일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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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 화학물질로 인한 피해 구제, 개인에게 떠넘길 일 아니다”

입력
2016.05.1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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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부처들 업무 소관 따지며

“피해보상 개별 재판으로 해결”

무책임한 대응 일관 피해 커져

질환 의심돼도 호소할 곳 없어

유해성 증명도 개인이 하긴 무리

피해 대응할 컨트롤 타워 필요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판매 시작 11년만에 폐 손상 원인이 밝혀지고, 그 뒤로 5년이 지나서야 본격 수사가 진전을 이루는 등 진상과 책임 규명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스스로 진상규명에 나섰던 전문가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2006년 처음 의문의 폐 손상 환자에 주목해 원인을 추적한 홍수종(56) 서울아산병원 환경보건센터장, 2012년 정부보다 앞서 자발적으로 피해자 조사를 수행한 백도명(60)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가 그 주인공들이다. 10일 만난 이들은 “유해 화학물질로 인한 피해를 개인에게 해결하도록 떠넘기는 것은 정부의 역할이 아니다”라고 입을 모았다.

-가습기 살균제 문제에 처음 천착하게 된 이유는.

“2006년 소아 환자 3명이 잇달아 사망했다. 중환자실에서 폐부전으로 사망하는 확률이 20%정도인데, 3명 중 3명이 다 사망하니 의문이 들었다. 환자들이 인공호흡기를 삽입해도 안 들어갈 정도로 폐가 딱딱해지고, 폐가 찢어지는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경험해보지 못한 병이라 다시 환자가 죽어나갈까 두려웠고 원인을 밝혀야겠다고 생각했다.”(홍 센터장)

“2011년 피해자 모임에 참석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피해를 입은 것을 보고 문제가 심각하다고 느꼈다. 추후 힘겨운 소송 과정을 보며 전문가의 역할이 절실하다고 공감했다. 결국 인과관계를 증명해야 하는데, 피해자들이 직접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백 교수)

-초기 정부 대응을 놓고 좀 더 일찍 피해 확산을 막을 수 있지 않았느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2008년 질병관리본부가 조사를 벌여 바이러스가 원인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 후 원인이 무엇인지 같이 추적해 나갔으면 좋았을 것이다. 물론 당시에는 이게 질병인지조차 확신하기 어려웠다. 정부 부처가 해당 기관의 역할을 뛰어넘어 무언가를 시도하지는 않았다. 쉽지 않았을 거란 생각은 들지만.”(홍 센터장)

-2011년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으로 지목된 이후에는 어땠나.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을 확인한 이후에도 피해 보상은 개별적으로 재판을 통해 해결하라는 게 정부의 입장이었다. 하지만 전문 영역이기 때문에 화학물질로 인한 피해를 개개인이 증명하고 책임을 묻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다. 기업들은 잘못을 부정하고 소송을 끌면서 지치게 해 남은 몇 사람만 보상해주고 끝내려는 게 전형적인 대응 방식이라 개별적으로 싸우는 게 쉽지 않다.” (백 교수)

“오랜 기간 피해자들이 개인적인 싸움을 벌여오면서 가정이 무너진 것이 가장 안타깝다. 지금이라도 피해자들이 일상생활로 돌아올 수 있도록 의학적 심리학적 치료와 피해 보상 등 피해 회복 대책을 하루 빨리 내놓아야 할 것이다.” (홍 센터장)

-정부가 적극적으로 피해 구제에 나설 수는 없었을까.

“지금은 담당부처가 환경부로 정리됐지만, 당시 환경부는 제품의 문제지 화학물질 관리의 문제가 아니라는 시각이었고, 질본과 산업자원부도 자기네 소관이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국무조정실 주관으로 관계부처 조정회의도 열렸지만 잘 정리되지 않았다.”(백 교수)

-민관합동 폐손상위원회가 추산한 가습기 살균제 사용자 수가 800만명인 것을 감안하면 피해자 규모(정부 공식 인정 221명)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얼마나 될까.

“사용자는 많지만, 피해 인정 범위가 중증 폐질환에 국한돼 있어 피해자가 적다. 지금보다 얼마나 더 늘어날지 현재로서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피해 인정 범위가 코, 목 등과 관련된 질환으로 확대될 경우 피해자 규모가 크게 늘어날 것이다.”(백 교수)

“여러 역학 자료를 보면 당시 전체 인구의 70% 정도가 가습기를 사용했고, 그 중 30%가 가습기 살균제를 쓴 것으로 파악된다. 1,000만명 이상 가습기 살균제를 썼다는 건데, 이들을 다 피해자로 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미세먼지를 마신다고 다 병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가습기 살균제를 한 번이라도 사용했던 이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가습기 살균제가 건강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치고, 사용 정도에 따라 얼마만큼 영향을 받는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고, 그것을 국민들에게 설명해야 할 것이다.”(홍 센터장)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과제가 있다면.

”환경적 요인에 의해 질환이 발생한 것으로 의심돼도 어디에다 알려야 할지조차 모르는 국민이 많다. 어떤 이들은 국민권익위원회를 찾고 어떤 이들은 인권위원회를 간다. 피해자들이 문제제기할 수 있는 정리된 통로가 필요하다.”(백 교수)

“각 부처가 유기적으로 협력해 각 분야에서 해야 할 일을 최대한 할 수 있도록 조율하는 컨트롤 타워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계속 법적 다툼을 하게 될 텐데 정부가 추가 연구를 통해 인과관계를 명확히 할 필요도 있다.”(홍 센터장)

채지선 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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