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도널드 트럼프로 정리된 듯 보이고, 민주당에서는 힐러리 클린턴의 경선 승리가 확실해 보인다. 민주ㆍ공화당 모두 후보들간의 경쟁이 많은 볼거리를 제공해 줬지만 그 과정에서 미국 정당정치 특징을 선명하게 드러내기도 했다.
1789년 건국 이래 미국의 대의제 민주주의는 안정적으로 정착해 왔다. 이를 가능하게 한 가장 큰 요인은 무엇보다도 정당의 발전이다. 사회에 산재해 있는 여러 가지 이익 및 이해관계를 집약하여 이를 국가와 정부에 체계적으로 대변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당을 통한 민주주의 실현이 주로 투표와 선거를 통해 이뤄지기 때문에 정당과 정당지지자 그리고 일반 시민들은 추구하는 목표에 따라 서로 갈등을 겪기도 한다. 대표적인 게 ‘실용주의자’(Pragmatists)와 ‘이념주의자’(Purists) 사이의 갈등이다. 실용주의자들은 선거에서의 승리를 최우선시한다. 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를 선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이념주의자들은 정책을 통한 이해관계의 대변을 더 중시하기 때문에 정당의 정강ㆍ정책을 보다 선명하게 드러내는 후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공화당 경선과정에서 트럼프가 당의 주류 정치인 및 지지자들로부터 꾸준한 견제를 받은 가장 큰 이유는 당선 가능성이 낮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사실 공화당은 1964년 대선 패배 이후 꾸준히 실용주의 정당으로 발전해 왔다.

1964년 대선에서 공화당 보수파의 절대적 지지 속에 후보가 된 베리 골드워터가 본선에서 민주당의 린든 존슨 당시 대통령에게 큰 표 차이로 패했다. 더구나 인기 없는 ‘극우파’ 대통령 후보 때문에 연방의원 선거와 지방선거까지도 모두 공화당이 참패했다. 이후 공화당 전국위원회는 선거 승리를 위한 형태로 재편성되고, 대규모 선거자금의 모금을 통해 선거 캠페인을 주도했다. 또 공화당원들이 당선가능성을 후보 선정의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보게 된 역사적인 계기가 되었다.

현재 트럼프의 지지율이 조금씩 상승하고 있지만 여전히 본선 승리 가능성은 낮다. 게다가 연방 상원의 다수당 지위도 민주당으로 넘어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많은 공화당 연방하원 출마자들도 선거 운동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2016년 공화당은 지난 역사의 흐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민주당 경선에서도 실용주의와 이념주의의 대결이 펼쳐지고 있다. 클린턴을 지지하는 민주당원들 대다수는 본선 승리를 의심치 않는다. 버니 샌더스 지지자들은 사회민주주의에 기반을 둔 그의 뚜렷한 경제ㆍ사회정책에 크게 매료되었다. 더구나 샌더스는 경선을 완주하여 민주당의 정강ㆍ정책을 ‘좌클릭’할 것이라고 말한다.
두 번째로 중앙당과 개별 후보들의 끊임없는 경쟁도 미국 정당정치의 중요한 특징이다. 정당은 파벌에 불과할 뿐이라고 선언한 ‘건국의 아버지’들의 영향으로 인해 미국에서 중앙당의 역할과 파워는 불과 몇 십년 전까지만 해도 미약했다. 그러다가 70년대 민권운동과 반전운동을 거치면서 민주당이 진보적인 하나의 색채를 띠기 시작했고, 공화당도 80년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경제ㆍ안보 정책을 통해 뚜렷한 보수적 정체성을 확립했다. 이것은 중앙당을 통한 정강ㆍ정책의 수립과 중앙당을 중심으로 한 선거의 수행 등 중앙당의 부활을 의미했다.
한편으로는 중앙당의 역할 강화가 유권자들의 선택을 용이하게 하는 좋은 효과도 불러 왔다. 일반적으로 선거에서 정당과 후보자를 선택하기 위해서는 누가 무엇을 주장하고 어떤 이익을 대변하는지 알아야 한다. 일상 생활에 쫓기며 살아가는 평범한 시민의 입장에서는 시간과 비용을 치르며 ‘공부’해야 하는 문제일 수 있다. 그런데 민주ㆍ공화 양당이 선명하고 통일된 입장을 취함으로써 유권자들의 수고를 대신 해주게 된 것이다.
물론 정당 후보들이 일방적으로 정당의 이념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건 아니다. 정치인들이 때맞춰 필요한 정책을 스스로 개발하여 정당의 이념을 적극적으로 이끌기도 한다.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위대한 대통령들은 이를 성공적으로 완수한 정치인들이디.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19세기 중반 노예해방을 통해 공화당의 이념을 만들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20세기 초반 뉴딜정책으로 민주당이 누구를 대표하는 정당인지를 보여주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많은 주류 공화당 인사들이 트럼프 후보를 향해서 공화당의 정체성과 거리가 있다는 비판을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중앙당 중심의 견해일 수 있다. 물론 트럼프가 공화당의 대선ㆍ총선 승리에 도움을 줄 수 있느냐, 또 트럼프가 미국 민주주의를 위해 바람직한 것이냐 여부는 다른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공화당 경선에서 당원과 시민들이 선택한 후보라면 2016년 현재 공화당의 기저에 존재하는 ‘정체성’이 트럼프에 투영된 것일 수도 있다.
요컨대 정당 정치의 특징은 정당이 선거에 승리하기 위한 도구인가, 아니면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인가 하는 양 극단 사이에서 긴장관계를 놓치지 않는 것이라 하겠다. 클린턴과 트럼프가 각 당의 대선후보로 굳어지면서 민주당과 공화당이 보여주고 있는 미국 정당정치의 단면도 이와 다르지 않다.
박홍민ㆍ미국 위스콘신대(밀워키) 정치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